연말연시,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고 싶어도…

김수진(서울 중구 신당동)

  • 입력 2012.12.24 10:13
  • 기자명 김수진(서울 중구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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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요리에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와 내 남편은 고기를 넣어 샤브샤브를 해먹자고 뜻을 모았다. 고기와 야채를 잔뜩 사서, 팔팔 끓는 국물에 담가 건져먹으면 되니 간편하고 좋은 아이디어!

가장 먼저 장을 봐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재래시장이 크지 않다. 그 작은 시장 안에 중소형 마트가 대여섯 개 들어서 경쟁을 하고 있다. 조그만 과일이나 야채가게, 방앗간, 정육점 등은 언제나 한산해서 눈에 밟히지만 한꺼번에 장을 보기에 편하다 보니 결국 마트로 걸음을 옮겼다.

어린 배추, 무, 청경채, 버섯, 만두, 칼국수 면까지 고르고 가장 중요한 고기를 보러 갔다. “얼마만의 요리인데…” 싶어서 큰 맘 먹고 한우를 고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마트 안에 있는 정육점에는 한우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뭐가 있냐고 물어보니 호주산, 미국산이 있다고 한다. 흥! 하고 돌아서서 다른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거기에도 한우는 없었다. 내 참. 평소에는 비싸서 못먹던 한우 큰 맘먹고 먹으려고 했는데 도와주질 않는다.

안되겠다 싶어서 마트 말고 정육점을 가보았다. 그러나 몇군데를 다녀봐도 한우는 없었다. 심지어 정육점 간판에 ‘축협 서울공판장’이라고 써있는 곳에서도 한우를 팔지 않았다.  ‘소고기 600g에 8천원’ 이렇게 써 있어서 가격이 너무 싼데 한우 맞냐고 하니까 “그럴 리가 없죠~” 라면서 손사래를 치는 주인들. 소고기를 달라고 하니까 전부다 물어보지도 않고 호주산 아니면 미국산을 꺼내주는 주인들.

한우를 찾는 나를 오히려 뜬금없이 쳐다보기까지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우를 파는 곳을 찾아서 사긴 했지만 추운날 돌아다녔던 기분이 꽤 나빴던 것은 아직까지 기억난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거나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던 때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직접 장을 보면서 알게 된다. 어느 계절에 어떤 채소가 나오는지, 김장철이 되면 어떤 채소들이 비싸지는지, 얼마나 먼 나라에서 과일들이 수입되어 들어오는지, 국내산 고기와 수입 고기의 가격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등등. 그리고 우리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축산물을 이용하는 것이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두부를 살 때에도 우유부단한 나는 한참을 고민한다. 수입콩으로 만든 판두부는 한 모에 500원, 브랜드에서 나온 수입콩 두부는 1000원, 그 위로 유기농 수입콩 두부, 국내산 콩두부, 국내산 유기농 콩두부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제일 좋을 것 같은 국내산 유기농 콩두부는 한 모에 3~4000원대를 호가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국내산을 먹고 싶어도, 몸에 좋은 유기농을 먹고 싶어도 돈 때문에 저가의 수입산 식재료를 고를 때의 기분이란….

고맙게 끼니를 때워주는 김밥집의 천원김밥도 중국산 쌀에 출처모를 야채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갑 사정에 어쩔 수 없다. 삼겹살집엘 가도 1인분에 만원 하는 국내산 돼지고기보다 저렴한 캐나다산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에서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국내산을 팔지 않는 식당과 정육점들, 지갑 사정에 국내산을 사먹기 쉽지 않은 소비자들. 높은 가격에 소비자들은 서운할 수 있지만 국내산 농산물의 가격이 높다고 해서 농민들이 부자가 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저가의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 밀려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들 수는 점점 늘어난다고 하니 말이다.

웰빙 시대, 잘 먹는 것이 중요하게 된 시대 치고는 먹을 것을 생산하는 사람이나, 만들어 파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다. 요즘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제~” 하며 소고기 사먹고 싶어도 정작 그렇게 기분 좋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가오는 연말 연시, 송년회다 성탄절이다 해서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먹을 사람들이 쉽고 저렴하게, 기분 좋게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한우를 사먹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 농민들도 기분 좋게 연말 연시를 보낼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이번 성탄절에는 다시 한번 한우를 넣은 샤브샤브에 도전해봐야겠다. 이번에는 쉽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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