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에 식은밥으로 빚고 납일에 마시는 납주(臘酒)

  • 입력 2012.12.17 08:34
  • 기자명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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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주'는 섣달에 빚었다가 납일 중순경부터 그믐까지 마시는 술이다.
우리 풍속에 ‘작은 설’로 알려진 명절이 납일(臘日)이다. 납일은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을 가리킨다. 대개 연말 무렵이 되는데,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제사를 올렸고, 민가에서는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납향(臘享)이라고 일렀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옛날 내의원에서 납일에 각종 환약을 만들어 올렸는데, 임금은 이 약을 근시(近侍)와 지밀나인(至密內人)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주로 정신적 장애에 쓰는 청심환, 열을 다스리는 안심환, 곽란을 다스리는 소·환 등이었다.

한편, 납약(臘藥)이라고 하여 기로소(耆老所)에서도 환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각 관청에서도 많이 만들어 서로 주고받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이날 새잡기를 하는 풍속이 전해 온다. 통발을 추녀에 대고 긴 막대기로 추녀를 치면 새들이 자다가 놀라 날아오르다가 통발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납일에 잡은 새고기는 가을부터 곡식을 주워 먹고 살아, 납일 무렵이면 살이 오르고 맛도 좋을 뿐 아니라, 어린 아이가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침을 흘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또 ‘납설수(臘雪水)’라 하여 납일에 내린 눈을 곱게 받아 독에 담아두었다가, 녹으면 그 물로 환약을 만들 때 반죽을 하거나, 안질에 걸렸을 때 이 물로 씻으면 낫는다고 하며, 김장독에 넣으면 김장의 맛이 변하지 않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하여 납일에 눈을 받는 풍속이 있다.

그런데 섣달 12월에, 특히 새해 세찬 준비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일로 사람의 왕래가 분주할 때 나눠 마시는 술이 있다. 섣달에 빚어 두었다가 납월 중순경부터 그믐날까지 마시는 술로, 납주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이 연말 모임이나 송년회 때 술자리를 갖는 일이 잦은데, 이러한 술자리가 사실은 우리 고유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인데도 가양주문화가 사라지면서 일부 호사가들에 의해 뭣도 모르면서 외래문화를 답습하고 값비싼 와인과 위스키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가슴만 아플 뿐이다.

납주는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빚는다. 평소 먹고 남아 모아두었던 쉰밥을 이용하는 방법이 그것으로, 평소 자주 빚는 술이나 자기가 알고 있는 방법대로 술을 빚되, 쉰밥을 함께 섞고 버무려 술독에 안쳐서 한 번 발효시키는 단양주이다.

대개 10일 정도면 술이 익게 되는데, 이때 용수를 박아 그 안에 고인 청주를 다 떠낸 다음, 더 이상 술이 고이지 않으면 물을 쳐가면서 탁주를 걸러 마신다.

<임원십육지>와 <농정회요>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깊은 술로 생각되며, 그러나 방문에서 보듯, 쉰밥은 본술 재료보다 많아서는 안되는, 다시 말해서 주재료로 이용되는 쌀(고두밥) 양의 1할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쉰밥이 고두밥 양보다 많게 되면 알코올도수가 낮은 술이 될 뿐 아니라, 오래 보관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술을 빚을 때 평소 먹는 밥이 아닌 찐 밥(고두밥, 지에밥)을 만들어 술을 빚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 만드는 법

�술 재료 찹쌀 2석, 물 200근, 누룩 40근, 쉰밥 2말(쌀 2말).

�술 빚는 법

1. 찹쌀 2말을 물에 깨끗이 하루동안 불린 뒤, 건져서 물기를 뺀다.

2. 불린 찹쌀을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힌다.

3. 쉰밥 2말이나 멥쌀 2말을 물에 깨끗이 씻어 3~4시간 불렸다가 건져서 밥을 짓고 이내 차게 식힌다.

4. 찹쌀 고두밥과 식은 밥, 누룩, 물을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린 다음, 술독에 담아 안친다.

5. 술독은 예의 방법대로 하여 10일 가량 발효시켜, 술이 익으면 용수를 박아 채주한다.

6. 청주를 떠내고 남은 찌꺼기는, 끓여서 차게 식힌 물 1말을 붓고 체로 걸러 탁주를 만든다.

<글·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시인/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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