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쓸 청주 빚는 방문 ‘급수청방’

  • 입력 2012.11.19 09:51
  • 기자명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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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술을 빚는 법 가운데 그 원료인 쌀을 가루로 빻은 뒤 시루에 쪄 낸 무리떡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인류가 화식(火食)을 하게 되면서 터득한 식사형태 가운데 하나가, 위의 방법처럼 시루를 이용한 증숙(법蒸熟法), 또는 증자법(蒸煮法)이기 때문이다.

쌀을 비롯한 곡물의 도정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원시시대에는 갈돌을 이용한 도정법이 이루어졌고,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토매나 맷돌, 절구를 이용한 도정을 하여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정과 가공기술은 곡물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과 동시에 낱알의 파쇄를 초래하게 되어, 결국 싸라기와 같은 갈은 곡식가루가 생겨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끓여 먹거나 쪄 먹는 방법의 식생활을 영위해 왔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싸라기 형태의 곡물가루를 이용한 무리떡 형태의 원료를 사용하여 술을 빚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급수청방(急需淸方)은 조선시대 중엽의 농업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방문으로서, 앞서의 설명에서 보듯 무리떡으로 밑술을 빚고 고두밥으로 덧술을 빚는, 전통적 이양주법의 방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방문이 여느 전통주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급수청방이란 술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우선, 급수청방이란 술 이름을 보면, ‘급하게 청주를 얻을 수 있는 방문’이란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밑술 빚는 법에서 찾을 수 있다. 밑술을 빚을 때 끓여서 식힌 물에 멥쌀가루를 시루에 안쳐 지은 무리떡을 뜨거울 때 누룩가루와 함께 넣고 버무려 술독에 담아 안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밑술은 매우 빠른 시간에 끓게 되며, 발효가 빨리 잘 이루어진다. 여기에 찹쌀로 지은 고두밥과 진면(밀가루)을 함께 섞어 덧술을 한다. 덧술은 다른 술과는 달리 7일~10일이면 완성되는데, 덧술 역시도 발효가 빨리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밑술이 아직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덧술을 해 넣음으로써, 덧술 역시도 빠른 시간에 발효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한 부재료로 사용되는 진면(眞麵)은 밀가루를 뜻하는데, 밀가루는 밑술의 유기산 생성을 촉진하여 잡균의 오염을 막아주는 한편으로, 밀가루의 응집작용으로 술에 생길 수 있는 부유물과 이물질을 엉키게 만들어주므로,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 이용되었다. 결국 위와 같은 방문은 급수청방의 술이름 그대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발효를 시키기 위한 방법에서 추구된 술빚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방문에서 보듯 급수청방은 투입되는 재료의 양에 비해 청주 7~8병, 탁주 1대야로서 수율이 매우 낮은 술임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밑술의 무리떡을 냉각시키지 않고 뜨거울 때 투입한 데서 오는 결과이다. 즉 높은 온도에서 발효시킴으로써 발효기간은 단축시킬 수가 있지만, 그 결과 밑술은 농당(濃糖) 상태가 되어 밑술의 제조목적과는 달리 효모의 증식을 기대할 수가 없어 수율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급수청방은 청주의 맛은 매우 부드럽고 진미가 강한 술로서, 일반 속성주류와는 달리 고급청주라고 할 수 있으며, 탁주 역시도 부드럽고 감미가 뛰어나 술 못하는 사람들도 거뜬히 서너 잔은 마실 수가 있다. 다만, 앞서의 지적처럼 투입되는 재료의 양에 비해 수율이 낮기 때문에 일반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 술로서, 사대부나 부유층에서 급하게 술이 필요했을 때 빚는 방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급수청방(急需淸方:임원십육지).
1. 술 재료 : 밑술 : 멥쌀 2말, 누룩 3근 반, 끓인 물 4말. 덧술 : 찹쌀 4말 4근, 진면(眞麵 : 밀가루) 1근.

2. 밑술 빚는 법 : 1) 멥쌀을 물에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린 뒤, 가루를 만들었다가 시루에 안쳐 백설기(흰무리)를 짓는다. 2) 물을 팔팔 끓였다가 차게 식혀둔다. 3) 법제한 누룩가루를 준비하여 끓여 식힌 물과 함께 고두밥에 넣고 고루 버무린다. 4) 술독에 술밑을 담가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3일간 발효시킨다.

3. 덧술 빚는 법 : 1) 밑술을 빚은 지 3일째 되는 날 찹쌀을 물에 씻어 불린다. 2) 다음 날 찹쌀을 건져서 물기를 뺀 뒤,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힌다. 3) 찹쌀 고두밥과 준비한 분량의 진면 을 합하여 밑술에 넣고, 고루 섞어 술독에 담아 안친다. 4) 술독은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키면, 청주 7~8병, 탁주 1대야를 얻을 수 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시인/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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