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선거 여성농민 기획] “농민정책이 아니라 왜 여성농민정책인가”

  • 입력 2012.11.18 22:31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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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 농촌공동체 중요한 버팀목
농업노동에 가사·육아노동 전담자
무급가족종사자·보조자·농가주부에 머물러
의무는 있는데 권리는 없는 여성농민


“여성농민 통계자체가 없다. 가장 최근 자료는 200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다. 5년마다 실시하는데 여성농민만 대상으로 한다. 전체 농업 정책에서 얼마나 여성농민이 참여하는지 알 길이 없다. 가령 직불금을 받는데 여성농민이 얼마나 받는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아마 남성이 다 받을거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황경산 정책국장은 여성농민의 현실을 반영한 기초자료부터 제대로 없는 사실을 지적하며 농업정책에서 여성농민이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농민이 전체 농가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간다. 농업노동시간은 평균 8시간 35분,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 43분이다. 여성농민 44%가 농업노동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 핵심적인 농업노동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농업노동이 적은 청장년층 여성은 농외소득으로 농가경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농민 역할의 중요성에도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주체로 인식되기보다는 생산보조자, 농가주부, 무급가족종사자로 여겨지고 있다. 농어업 임금 자체도 하위층에 속할 뿐만 아니라 남성농민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농민은 61로 전 직종 중에 가장 낮다. 이는 여성농민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둔 가운데 본지에서는 2주차에 걸쳐 여성농민정책 기획을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여성농민단체가 공동으로 주장하는 여성농민 공약과 각 대선 캠프의 반응, 현장 농민의 삶을 조망하고 왜 여성농민 정책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경은아 기자>

▲ 마늘심기를 끝내고 작업장을 정리하고 있다. 6살 된 막내딸이 엄마 곁에서 화분에 흙을 담아달라고 조르고 있다. <사진=한승호 기자>
숨 가쁜 하루가 365일 쳇바퀴 돌 듯 굴러간다

“촌에 시집오지 마. 진짜진짜 힘들어”
경북 의성군에서 마늘, 자두 농사에 한우를 키우고 있는 황정미씨(44). 아이는 셋,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막내가 6살 유치원에 다닌다. 황씨는 소에게 여물을 주며 기자에게 여성농민의 고단함을 토로했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육아까지 바빠도 너무 바쁘다

황정미씨 집에 방문한 날은 지난주 토요일(10일).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주말은 새벽부터 들일로 분주한 대목이다. 평일에는 아이들 깨우고 밥 차리고, 학교 보내고, 막내 유치원까지 보내고 나서야 아침 9시 반경부터 들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날은 일요일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었어 좀 더 서둘러 6시 30분에 시작해 마늘심기가 2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남편은 마늘 못 심은 다른 집에 도와주러 가고, 황씨는 이제 남편 대신 한우 40두에 밥을 준다. 이리저리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기도 하고, 그러길 1시간. 아침 겸 점심밥상을 준비하고, 식사가 다 끝나고 나니 11시. 인제야 인터뷰할 시간이 났다.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다. 황 씨는 막내딸과 실랑이가 붙었다. “만화 2개밖에 안 봤다.”, “더 본거 안다. 이제 그만 봐라.” 이번에는 둘째다. “둘째 너 손님 왔다고 컴퓨터 하는 줄 안다. 그만해라.” 이어 수북이 쌓인 설거지거리를 뒤로 하고 마늘 작업장 정리에 나선다. 막내가 엄마 뒤를 쫓아나섰다. 작업하느라 호기심 많은 막내딸 상대하느라 그녀는 여전히 분주하다.

그는 잠잘 때 빼고는 계속 일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 차리고, 학교 보내고, 들일하고, 집안일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데리러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간다. 가사노동은 짬짬이 한다. 남편이 다른 집에 일을 도우러 가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은 그나마 마음 푹 놓고 집안일을 할 수 있다. 날이 좋을 때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농사일은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마늘을 심는다. 이어 비닐 씌우고, 물 대주고, 소 새끼 받고, 자두나무 가지치기하고 이렇게 한겨울이 지난다. 봄이 오고 마늘 수확하고 바로 벼 심고, 자두 수확하고, 벼 수확하고, 마늘 파종 준비하고, 또 마늘 심고…. 숨 가쁜 하루가 365일 쳇바퀴 돌 듯 굴러간다.

▲ 마늘심기 막바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면 황정미씨 부부는 새벽부터 분주하다. 농촌에서는 기계 부리는 일이 큰일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부부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사진=한승호 기자>

남편 계좌는 외워도 내 계좌는 못 외워

도시에서 자란 남편과 달리 시골에서 나고 자란 황씨는 남편보다 농사일을 더 잘 안다. 그래서 농사계획 전반과 재정 관리도 함께 논의한다. 그럼에도 남편 계좌번호는 외워도 본인 계좌번호는 모른다. 모든 수익이나 지출이 남편 통장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는 “농협이나 동사무소에서 내 이름을 대면 아무도 모르지만, 남편 김 아무개 집입니다 하면 다 통한다”고 말했다.

영농후계자는 현재 황씨. 남편이 2번 떨어지자 행정에서 부인 이름으로 신청하라고 해서 하게 됐다. 대부분 영농후계자, 전업농은 남편이 신청한다. 그러다 보니 지원이 남편에게 집중된다. 본인 명의의 농지가 전혀 없는 여성농민은 78.7%에 이르고 본인 명의의 농지가 있는 21.3%는 황씨의 경우나 남편이 돌아가고 재산을 상속받은 독거노인이 대다수이다. 여성은 농산물 판매대금도 남편의 통장에 입금돼 여성 명의의 통장이 있더라도 거래실적이 낮아 대출을 받기 어렵다. 여성이 조합원이 되어도 농산물 판매대금 입금통장은 남편에게 통합하는 것이 좋다면서 업무의 편리성 때문에 담당자들이 강력히 권하는 분위기다.

작업 환경도 기계 위주의 남성이 하는 일이 인정받는다. 여성농민이 하는 노동집약적인 일은 낮게 평가되고 있다. 황씨는 “어르신들은 기계 부리는 일이 큰일이라고 한다. 남자가 기계로 우르르 마늘을 심고 나면 여성농민이 나머지를 다 한다. 혼자 있는 분들은 기계가 없으니까 3일을 그 집에 가서 잔손가는 일을 다 한다. 그러면 기계 부리는 사람이 하루 잠깐 일을 해준다. 그렇게 계산을 따진다”고 전했다.

실제 농사를 전반적으로 책임지고 총괄하는 경영주가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농민은 70%다. 본인이 경영주라고 생각한 여성농민은 26.3%로 배우자 사망으로 배우자가 없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남성 위주로 구성된 농촌사회가 여성농민을 자연스럽게 보조자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농촌공동체 여성농민 없이 못 돌아간다

“따지고 보면 촌에서 여성농민 없으면 일이 안 되거든. 체육대회를 하더라도 동네 부녀회장이 음식 만들고 하니까 굴러가지. 툭 하면 소머리국밥 끓여야 하고 전부 일거리거든. 뒤에서 다 여성농민이 받쳐주니까 굴러가는 거야”

농촌 인구의 절반. 농사일의 절반, 가사노동의 대부분. 행사 뒷바라지. 여성농민은 농촌사회의 중요한 버팀목이다. 그럼에도 권리나 지위는 인정받지 못한 채 여성농민은 무급가족종사자, 경영주 외 보조자, 농가주부의 위치에 머물고 있다. 여성농민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여성농민, 대선에서도 소외되나
정책방향 엿보기 어려워… 농민정책 담당이 없는 곳도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에는 모든 후보 공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생활개선중앙연합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가 18대 대선 여성농업인 6대 공약을 마련했다. 여성농민 공약에 대한 각 대선 후보 캠프의 반응은 어떨까.

여성농민단체들은 대선후보 측에서 보내온 답변서에 대해 대선후보들이 여성농민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평가했다. 검토하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한 캠프부터 비교적 성실하게 답을 보내온 캠프, 명확한 농업정책 방향 속에서 정책을 제시한 캠프도 있었다. 그렇지만 동의하는 수준을 넘어 여성농민 정책에 대한 큰 방향과 정책을 제시한 캠프는 드물었다. 다만 여성농민단체가 중요하게 꼽는 여성농민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담할 부서에 대해서 모든 캠프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서 차기 정권에는 생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성농민단체들은 여성농민 공약 발표에 무관심한 대선후보 모습을 확인, 여성농민 정책을 법제화하고 대선공약으로 받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단결하는 모습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농업·농촌에서 여성농업인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며 여성농업인을 위한 보호·육성과 문화·복지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6대 공약의 세부공약 36개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 전반적으로 필요성에 공감을 보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농어업활동이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유통·서비스 분야로까지 확장되면서, 여성성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36개 세부공약 별로 답변, 공감과 우려, 다른 대안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두 번째 공약인 여성농업인 전문 인력화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제외한 모든 공약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농민중심형 농업, 국가책임형 농업, 통일대비형 농업이라는 구체적인 농정방향을 제시하면서 농산어촌 특별법과 여성농업인 법적·경제적·사회적 지위확보는 이미 발표한 대선공약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 외 공약은 연구를 더 해 정밀한 대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
진보정의당 정책팀에 농업·농민 담당 연구원이 아직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6대 공약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며, 농업과 농민 문제를 매우 중요한 정책의제로 새기고 있다고 답했다.

18대 대선 여성농업인 6대 공약
▶법적·사회적 지위 확보를 통한 ‘농업인’으로서 권리 보장

여성농민은 2012년 현재 농업주종사자 중 50.8%를 차지하며 농업·농촌에 기여하는 역할과 위상에 비해 법적·사회적 지위는 아직 낙후한 상황이다. 여성농민단체는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지으면 공동농업경영주로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여성농업정책을 일관성 있게 전담할 수 있는 전담부서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내에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가치실현 주체로서
여성농업인 전문인력화를 위한 종합시스템 마련

농업·농촌에서 여성농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여성농민을 전문 인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각적인 접근과 시도는 매우 미비했다. 따라서 여성농업인육성재단(가)과 같은 민간 차원의 여성농업인 총괄육성기구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 또 여성농업인이 주로 참여하는 밭농사, 시설채소 등에 여성농업인용 농기계 지원 종합개발 추진, 여성농업인의 날 제정도 요구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창업 지원을 위한
‘농촌형 가공·창업지원 특별법(가)’ 등 특단 대책 수립

여성농민의 손맛과 전통을 재현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대규모 시설과 위생설비 등을 요구하는 식품위생가공법 등 비현실적인 경직된 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도시소비자와 직거래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지원하는 등 농외소득과 농업생산과 연계된 창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여성농민단체는 특별법 수립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성농업인을 위한 ‘여성농업인 복지정책’ 및
‘농촌형 종합 복지 정책’ 수립
현재 농촌복지정책은 가족복지, 지역복지 등의 성격이 강해 여성농업인이 복지대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에 대한 여성농업인 지원 확대, 여성농민 질병의 공공의료 질 개선과 접근권 보장, 이주여성농업인 정착 지원, 농산어촌 교육특별법 제정 설치 등 여성농업인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여성농업인 육성을 위한 정책 인프라 확보
여성농업인 정책을 수립·시행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효율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지자체·농협·유관기관·지방연구원 등 여성농입인 육성 위한 관계기관 간 유기적 네트워크 구성을 주장했다.

▶국민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농축수산물 공급기반 구축
수입농산물, GMO 농산물 등 불안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농수축산물과 식품의 공급기반이 시급하다. 지역 공공급식 시스템 개발 및 추진, 자가 채종 제한하는 종자산업법 시행령 개정, 수입농산물에 대한 검사 및 검역체계 강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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