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농의 세계식량주권상 수상이 갖는 의미

  • 입력 2012.10.22 09:34
  • 기자명 허남혁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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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뉴욕에서 전여농 박점옥 회장이 세계식량주권상을 수상했다. 유엔 식량권 특별보고관인 올리비에 드 슈터 박사(우리에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사회과학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장 지글러 박사의 특별보고관 후임)가 사회를 보는 뜻깊은 자리였다. 국내 언론들은 그 의미를 거의 무시했지만,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류언론에서도 다루었다.

이 상의 주된 주체는 미국의 지역사회먹거리보장연대(CFSC)라고, 지역에서 먹거리운동을 하는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연대체인데, 현재는 미국 전체의 농장-학교 직거래 프로그램(팜투스쿨)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2006년에 필자는 CFSC가 개최하는 연례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그냥 지역사회먹거리보장과 로컬푸드 운동을 하는 단체라고만 생각을 했고, 자기 나라 안에서 아무리 로컬푸드 운동을 떠들어봐야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농산물을 팔아먹으려고 자유무역을 설파하면서 다른 나라의 로컬푸드 활동을 방해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대응을 하고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연대사를 하러 나온 사람은 비아캄페시나의 회원단체인 멕시코 농민단체 회장이었다. 초록색 비아캄페시나 스카프를 두른 그는 식량주권운동과 먹거리정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알고 보니 CFSC는 미국과 인접한 나라들의 농민운동단체들과도 연대관계를 갖고 있었고, 내부에 국제연대위원회가 별도로 조직돼 있었다. 그런 맥락 속에서 2009년부터 이 단체가 주도하여 세계 식량주권상이 제정되었고, 비아캄페시나, 브라질 무토지농민연합(MST) 등이 수상했다.

왜 CFSC가 전여농의 활동에 주목하고 올해 이 상을 수여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토종종자활동과 언니네텃밭 사업 등 전여농의 식량주권활동이 전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하고 뜻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보통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토종종자활동이나 정치적 투쟁활동 등 소농들에 의한 농민운동적 성격이 강력하게 나타나고, 선진국에서는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는 로컬푸드 운동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제3세계와 선진국의 경계지대에 놓여있는 한국에서 두 가지 성격이 결합된 전여농의 사례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성농민들이 중심이 된 활동이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여성농민만의 농민운동단체는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농촌의 여성농민들과 도시의 여성들이 먹거리를 매개로 연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식량주권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여성운동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가 큰 사례이다.

마지막으로는, 토종종자사업도 언니네텃밭 사업도, 그간 농업의 근대화와 산업적 농업화에 의해 점차 사라져간 생태적 방식의 농사와 텃밭이라는 비시장적인 공간이 여성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비아캄페시나에서 언급하는 식량주권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농들에 의한 생태적 농사법이기 때문이다.

식량주권 개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가족 소농들의 생태적 농사법을 되살리고 이를 지역의 소비자들과 나누는 로컬푸드 활동을 통해 지금의 세계화된 먹거리체계를 지역화함으로써, 가족 소농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전여농은 언니네텃밭 사업에서 여성농민들이 그동안 일구어온 텃밭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생태적 방식으로 지은 농산물을 도시의 여성들과 같이 호혜적으로 나누는 활동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로컬푸드 운동의 사례를 만들었고, 이것이 곧 식량주권 활동의 모범이 된 것이다.

얼마전 지역의 농민활동가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여성농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은 거의 다 잘 된다는 이야기에 참석자 모두가 동의했다. 남성농민들은 모든 일에 대해 다 냉소적인데 반해, 여성농민들은 아무리 경제적으로는 의미없는 일일지라도 새로운 일들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가부장적 산업문명에서 억압받았던 여성농민들이 배려와 돌봄의 생태적, 관계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21세기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최첨단의 선봉에 서 있다는 것을 이번 수상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전여농의 앞날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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