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따기

  • 입력 2012.09.10 09:48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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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다섯 명의 남자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50대 전후의 남자들은 모두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름을 대면 알만한 소설가이고 그런 인연으로 우리 집으로 일종의 사전 견학차 온 것이었다. 마침 복숭아를 따던 날이었고 얼추 작업도 끝난 시간이었기에 시장에 가지 못한 흠집 난 복숭아를 한 바구니 씻어와 원두막에 둘러앉았다. 학교선생을 하다가 일찌감치 퇴직한 이도 있고 도저히 무슨 일을 하며 평생 살았는지 요령부득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농사일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라 그런지 복숭아를 먹으면서 연신 농사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가만히 들어보니 영 초짜들은 아니었다. 토양이니, 미생물이니, 효소제재니 하는 전문(?) 농업용어들을 스스럼없이 구사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나도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적 있는 ‘도시농업’을 하는 이들이었다.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에 살면서 베란다가 됐든 마당이 됐든 소규모나마 농사를 짓는 것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도시 근교의 꽤 널찍한 땅에서 몇 년째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다. 물론 제일 많은 사람이 이백 평 정도이고 대개 사, 오십 평인 장난 수준이지만 농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보였다.

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새겨듣자니, 귀농의 이유도 모두 같진 않았다. 어떤 이는 텃밭 정도 가꾸며 은퇴 후의 생활을 즐기려는, 그러니까 귀농이라기보다 귀촌을 원했고 어떤 이는 진짜 농사를 지어 경제생활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특히 그가 우리 과수원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면적은 얼마며 인건비와 농약 값, 수입 등에 대해 꼼꼼하게 내게 물어왔다. 농사짓는 일에 무슨 영업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지난 17년 동안의 과수원 연혁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태풍에 부러진 복숭아나무들을 보여주었다.

이미 딸 때가 되어 진하게 붉은 빛을 빛내는 사과를 보면서 그는 연신 탐스럽다, 는 말을 연발했다. 그러면서도 사과밭에 들어간 노고들, 그러니까 기본적인 시설에 가지마다 줄을 매어 달고, 색을 내기 위해 잎을 따고, 은박비닐을 깔고, 새를 쫓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야 하는, 등등의 요즘 일만 보고도 좀 질리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 귀농을 권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의욕이 앞서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 도무지 과수원을 해나갈 성싶지 않기도 했다. 오십이 넘도록 도시에서 설렁설렁 살았으면 그냥 그대로 살기를 바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귀농을 했다가 후회하지 않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개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그나마 농업에 가지고 있던 관심조차 사라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형편인 것이다.

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사과는 복숭아 따기보다 훨씬 수월하다. 복숭아는 쉬이 무르는 과일이라 두 손으로 고이 모시듯 따야하고 손의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두꺼운 장갑을 낀다. 그에 비하면 사과 따기는 식은 죽 먹기다. 한창 색이 곱게 난 사과는 태풍 영향으로 값도 좋다는 소문이었다. 우리 과수원도 떨어진 사과 이십여 박스를 주워서 주스공장에 가져다주긴 했지만, 대규모 피해를 입은 다른 농가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사과를 따는 손길이 기뻐야 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아버지도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 동안 잘 보이지도 않던 미세한 흠집이 난 사과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귀이개로 콕 떠낸 것 같은 이상한 상처였다. 아주 작은 새가 부리로 찍은 것 같다는 내 의견과 올해 유난히 많이 보이던 말벌이 물어뜯은 것 같다는 아버지의 진단이 엇갈렸다. 어느 쪽이 되었든 상품이 되어 시장으로 나가긴 틀린 놈들이었다. 전체의 1할 정도는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올해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고 신경을 썼는데, 역시 알 수 없는 게 농사다. 그에게 과수원을 권하지 않은 건 잘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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