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무더위를 잊게했던 초록휴가

  • 입력 2012.08.27 09:20
  • 기자명 윤주영 서울 용산구 후암동 도시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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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서울깍쟁이다. 유년기까진 친구들 거의 서울태생들이었고 서울 사람인 것이 우월한 것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다른 환경에서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지리산둘레길 함양, 산청 구간을 걸었다. 뙤약볕 아래를 혼자 걷다 논과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수줍음 많은 내가 먼저 인사 건네고 말붙인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당신은 뙤약볕 아래 일하고 계신데, 왠지 미안하다.

▲ 윤주영 씨

서울여성회에서 ‘횡성으로 떠나는 즐거운 초록 휴가’를 다녀왔다. 언니네 텃밭 횡성공동체 방문이다. 봄에 심은 채종포도 손보고, 횡성의 생산자 언니들과 만나고 섬강에서 물놀이도 했다. 도착 후 생산자 언니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조를 나누어 땅콩 밭의 비닐을 걷어내고 콩밭의 풀들도 베어냈다. 나는 콩밭에 들어가 풀들을 뽑기 시작했는데 일손이 없어 돌보지 못한 밭엔 너무도 무성히 풀들이 자라 맨손으로 뽑아내기에는 무리였다. 낫을 가져와 베기 시작하니 작업속도가 빠르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들어갔으니 팔과 다리는 풀에 베어서 상처투성이다. 땀은 어찌나 흐르는지 눈도 몹시 따갑다. 그래도 서툰 낫질에 다치지 않고 무사하니 다행이다 싶다.

함께 간 회원이 따라준 얼음물은 시원하고도 달았다. 막걸리였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는... 무성한 풀들이 잘려져 나가고 이 밭의 주인 콩나무들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것 같아 흐뭇하다. 풀들이 뭉텅뭉텅 잘려져 나갈 땐 쌓인 스트레스가 팍팍 잘려져 나가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났던 어르신들께 미안해서라도 더 힘차게 낫질을 했던 것 같다.

콩밭 작업이 제일 늦게 끝나 손을 씻고 오니 횡성공동체 언니들과 서울에서 온 회원들이 점심 준비를 다 해놓았다. 커다란 스텐양푼, 아니 다라이에 비빔밥이 한가득이다. 밭에 들어오기가 겁나 일은 안하고 앉아서 놀기만 한 우리 아이들 맵다고 투정이다. 억지로라도 끌고 들어가 땀흘 리며 일을 시켰어야 매운 고추장 들어간 밥도 호호 불며 맛나게 먹었을텐데, 아차 후회된다. 엄마만 신나게 일하고 맛있게 밥 먹어서 미안하다 얘들아.

횡성공동체를 방문할 때마다 은숙씨네 집으로 갔는데, 들어가는 길에 섬강이 아름다웠다. 언제가 나도 이 동네 사람들처럼 저 물에 들어가 멱을 감고 싶었는데, 이번 초록휴가는 제대로다. 아이들 핑계대고 함께 텀벙거렸다. 콩밭 매면서 흘린 땀들을 섬강이 깨끗이 씻어준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몹시도 즐거운 물놀이다. 아쉬운 물놀이를 마치고 간식시간이다. 공동체언니들이 예쁘게 깎아주신 감자를 아이들이 직접 강판에 갈아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잘도 갈아낸 감자를 엄마들은 화전처럼 곱게도 부쳐냈다. 집에서도 가끔 해먹었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않았을까?

갈 때마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내어주시는 횡성공동체 언니들에게 감사하다. 그 분들과 너나없이 식구들처럼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또다시 든다. 윤주영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도시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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