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옥수수

  • 입력 2012.08.20 10:08
  • 기자명 한도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존스타인벡의 출세작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30년 대공황시기 민중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후 ‘분노의 포도’는 가난한 농민들을 트렉터로 밀어버리는 자본의 비인간적 처사를 고발하여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진수로 곧잘 인용됐다. 농산물의 잉여가치를 올리기 위해 농장주와 자본가들은 포도를 농장에서 썩게 만들었고 배고픈 농민들의 인건비를 갉아먹었다.

이에 항거하는 농민들은 맞아죽거나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가 본 미국의 농업은 자본의 우악스런 힘으로 땅을 강간하는 수준이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뭐가 변한 게있나? 여전히 자본의 착취는 여기저기서 음험하게 노동자, 농민들의 골수를 빨아대고 있으니….

세계 식량 위기를 말하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바로 소설 ‘분노의 포도’무대였던 오클라호마를 비롯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 미국 중북부지역 옥수수곡창지대가 가뭄으로 쑥대밭이라는 외신보도가 연일 날아오고 있다. 미국발 세계식량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다국적 곡물기업들의 착취의 이빨이 우리 앞에 고스란히 드러날 일만 남아있다. 이미 시카고 선물거래시장에서 밀가루는 전년대비 27%이상 옥수수는 40%가까이 치솟았다고 한다. 바야흐로 ‘분노의 옥수수’가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향후 100년간 이런 가뭄이 세계 도처에 나타날 것이란 섬뜩한 경고다. 내년 3,4월 축산농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부터 준비할 수도 준비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사료값 30%인상이란 말이 실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료값이 너무 올라 만성이 돼버린 상황이라 심적 충격이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료값 30%인상은 다르다. 아니 그 돈을 주고 사료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본의 착취는 우리가 알고 느끼는 것 보다 더 악랄하기 때문이다. 세계 옥수수 시장을 지배하는 곡물 메이저들은 이미 내년도 곡물수급에서 30%이상의 자본이익이 창출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몬산토 같은 회사들은 GMO 등 또 다른 방법으로 자본잉여를 만들 것이라 한다.

세계 축산업이 아우성일 것이지만 우리나라 축산업은 일대 도륙의 시대를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사료 중에 볏짚을 제외한 모든 것을 수입해 축산업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가 매일 먹게 되는 고기나 우유, 달걀들이 99% 수입사료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조그만 충격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메이저 곡물회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우리나라 축산업은 위기 중에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사료가 없어 굶어죽은 소 때문에 경을 친 농부가 있었다. 그의 분노어린 눈에 정부의 어떤 정책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본의 착취 구조 속에 머무르는 축산업 자체가 문제였으니까. 존스타인벡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미련스럽게 땅을 강간하면서부터 ‘분노의 옥수수’는 자라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