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입력 2012.07.30 09:30
  • 기자명 전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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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소중한 나’

‘나는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마당에 봉숭아꽃이 한창입니다.’

‘어제는 소나기가 내렸다.’

‘오늘 아침 텃밭에 들깨모종을 하고 학교에 왔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이 요즘 익히고 계신 문장이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의 평균 나이는 칠십육세쯤 될 것이다. 그 분들은 나의 학생이시자 스승이신 분들, 나의 어머니이시자 우리들의 어여쁜, 사랑스러운 어머니이신 분들......

우리집 큰 아이가 첫 돌을 맞이할 즈음 시작한 이 일을 우리는 넷째 아이가 팔개월을 채워가는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거의 팔 년이란 시간을 어머님들과 배움을 함께 하고 있다. 도시살이에서 농촌살이로 삶의 주 공간을 옮길 때 우리가 가졌던 꿈은 적은 양이더라도 자급자족하기, 부모님의 배려 덕분으로 가졌던 우리의 배움을 ‘문화나 교육의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농촌 아이들이나 어르신들과 나누기였다.

그래서 전국성인기초 협의회 분들의 마음과 지혜를 받아 마을 어르신 다섯 분과 함께 교육평등, 행복나눔을 지향하는 어머니학교를 열었고, 마을회관 작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다 오년 전에는 글을 배우고자 하시는 학습자 분들이 많아져 농민회 분들과 마음을 합쳐 더 넓은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현재는 열 다섯분 정도 함께 하고 계신다. 일철이나 날씨가 안좋을 때 배움터로 향하는 학습자 분들의 마음은 쉬 닫히지만, 농사거리가 많지 않으시거나 이제 자그마한 밭마저 닳고 닳은 몸으로 농사를 지으실 수 없는 어머님들은 소일거리 하듯 배움터로 나오신다.

우리는 만나면 따뜻한 커피나 둥글레차를 마시며 유쾌한 수다를 한다. 차는 성마담이 담당하신다. 성여사님은 우리 사물함 열쇠키의 번호를 공책 한 켠에 적어 네 자리 번호를 하나하나 눌러 차주전자를 꺼내서 커피물을 끓이거나 찻잔을 씻는 일까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하신다. 심지어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면서도 차를 준비하셔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셨다. 김여사님은 지난 스승의 날에 공책 한 장을 찢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라고 적으시고 쪽지를 곱게 접어 초간단감사편지를 선물로 주셔서 감동백배! 네 살 딸 아이가 함께 배움터에 가면 꼬깃꼬깃 천 원 한 장을 건네시는 강여사님, 강여사님의 꿈은 둘째 따님이 선물한 두툼하고 큰 어르신용 성경책을 통독하시는 것인데 글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아 “성모님, 저 이 성경책 꼭 읽고 죽게 해주세요”라고 울며 애절한 기도를 드리고 공부하신다고...

편한 시절에 태어나 큰 질곡 없이 살아온 나는 ‘선생’이란 이름이 부담스럽고, 인내의 시간을 조용히 걸어오신 어머님들의 몸속에 담긴 오롯한 에너지를 배운다. 일상의 불만을 이야기할라치면 “암 말도 말어”라고 주시는 한 문장 속에 담긴 눈 침묵, 마음침묵의 지혜를 날마다 배운다. 내일도 획 하나 하나에 온 마음과 몸을 담아 글을 쓰시는 우리 어머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시 한 수 바친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전윤옥 충북 청원군 미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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