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먹는 조왕신

  • 입력 2012.07.30 09:27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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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벗이 예순 살을 후딱 넘기기 전에 자신의 집을 짓겠노라 벼르더니 기별이 왔다. 집들이랄 것은 없지만 와서 인기척이라도 두라고 한다. 그래도 집들인데 빈손으로 가긴 뭐해서 두루마리 화장지 한 묶음에 가루비누 한통을 들고 갔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거품처럼 살림이 일어나라는 뜻으로 그리하는 거라니 세속을 따른다. 한 20년 전만해도 이사를 가면 축하선물로 성냥을 많이 가져갔다.

혹자는 성냥으로 불같이 살림이 일어나라고 그랬다고 한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냥을 가져가는 것은 조왕신과 관련이 있다. 조왕신은 한 집안을 관리하는 신으로 주로 불과 곡식을 단속하는 신이다. 혹은 부뚜막신이라 해서 불을 꺼트리지는 않는지,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지 한 집안의 소소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매년 섣달그믐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께 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잡신이지만 옥황상제의 ‘전권대사’인 셈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제상을 차리고 빌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봤다. 조왕신이 옥황상제를 알현하러 가는 날이니 잘 살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제사래야 조촐한 개다리소반에 정화수 한 사발과 과일 몇 개, 떡 조가리가 고작이지만 조왕신은 배불리 먹고 옥황상제께 ‘죄 없네’ 하고 거짓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뇌물이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잘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내주는 것이 하늘의 뜻 인가보다. 허투루 한 짓은 모르쇠 하고 넘어가는 게 인간사와 별반 다르다고 할 것 없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굴비두름 꼴이 됐다. 친인척비리를 넘어 권력창출의 심장 6인회까지, 거기서 그만 인줄 알았는데 청와대 보좌관들까지도 줄줄이 엮어가고 있다. 사실 MB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의 희망이란 아주 단순했다. 먹고 사는 것을 편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MB또한 그리 공약했다. 그러니 청와대 보좌관들은 조왕신처럼 부뚜막에 올라 앉아 사람들이 죽을 끓이는지 밥을 끓이는지 살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자리를 이용해 수 억 원씩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은 넘어야할 선을 훌쩍 넘긴 것이다.

조왕신에게 내는 뇌물은 참소박한데 청와대보좌관들의 뇌물은 세상을 흔들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수많은 도덕적 의혹들이 지금도 제기 되고 있는 청와대. 오죽하면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강조할까. 이제 임기만료 5개월여를 앞 둔 시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참담하다”는 대국민사과성명을 내야 하는 처지에 있으니 딱하다.

노자에 ‘천망은 회회하나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라 했다. 하늘에 그물코가 넓디넓게 처져 있어 잘못한 것이 그 안에 갇히지 못할 것 같아도 하늘은 그것을 빠트리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조왕신이 뇌물 먹고 거짓보고 한 것도 사람들이 부정부패 한 것도 하늘은 이미 다 알고 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MB의 ‘사이후이(死而後已)’가 하늘에 전해지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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