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그리워하는 도시생활자

  • 입력 2012.07.23 10:25
  • 기자명 서하나 서울 용산구 도시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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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전에 어린이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의 언니들과 함께 노년에 관한 동화를 읽었다. 그리고 ‘노년에는 무엇을 할까?’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모임의 대다수는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여가를 즐기며 남은 생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가리라. 그곳으로. 나는 왜 시골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중소도시에서 자라, 서울에 사는 내가 그리워 하고 가고 싶어 하는 그 ‘시골’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시골’이라는 단어 속에 담아 놓은 여러 의미는 아마도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정도로 수렴되는 것 같다.

대다수의 도시생활자들과는 달리 시골은 자신의 이웃과의 관계가 긴밀한 곳으로 여겨진다. 사람홍수 속에서 외딴 섬들로 살아가는 마음 헛헛한 이들의 누울 자리는 너무 비싸고, 피상적이고 공허하게 엉킨 관계망은 저가 생활용품점의 그릇 만큼이나 수명이 짧다.

하지만 시골은 그럴 것 같지 않다. 투박하고 거칠지언정 사람의 해코지를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겠지. 이웃집 언니의 아이와 나의 아이가 함께 뛰놀다 또 다른 아이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신을 벗고 들어가 제 밥을 퍼먹을 수 있는 곳. 아이의 학원스케쥴 관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이 가져온 먹거리를 함께 거두고, 말리며,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는 곳. 시골은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간이다.

도시 한가운데서 모든 것을 소비하기만 하는 나는 배고픔의 해소를 위해 선택을 해왔다. 매끈하게 포장된 것들 중에 더 매끈한 것을 선택하는 수퍼마켓 순례는 내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현대인의 특권이자 성스러운 활동이었다. 하지만 국적도, 성분도 불분명한 그 많은 선택지들은 내게 모호한 위협감만 크게 할 뿐이다. ‘내 선택’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때그때 수확한 것을 보내주는 언니네 꾸러미가 반가운 이유는 누구 언니, 누구 할머니가 직접 키우고 거둔 먹거리, 나의 생명을 한동안 ‘안전하게’ 연장해줄 것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선택의 특권이 아무리 즐겁고 크다고 해봐야, 건강과 생명보다는 덜하니 말이다. 지금의 도시 생활에 대한 불만족이 ‘시골’에 간다고 다 해결이 될까? 이웃과의 거리, 안심 먹거리에 대한 만족도는 증가할 수 있으나, 익숙지 않은 그곳에서의 삶에 고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시골을 그리워하며 도시에서의 치열한 생존을, 그 그리움을 붙잡고 버틴다. 그것이 낭만적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련한 꿈, 그 그리움마저 품을 수 없다면 오늘 내 도시의 하루를 촉촉하게 적셔줄 그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이다.

광고의 세례를 받으며 무엇을 사고 소비하는 것으로만 지탱하기에는 내가 촌스러운 사람이거나,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있거나 둘중 하나라 느낀다. ‘인간다운 삶’이란 아주 잠시의 충동적인 소비와 편리함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어 인간다운 삶이란 자연과 어울리고, 사람과 어울리고 그 어울림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길 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하나 서울 용산구 도시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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