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 입력 2012.07.23 10:23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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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는 우리 귀에 익숙한 산 이름이다. 84년 여성산악인 김영자 씨가 우리나라 등산인으로 처음 올라 화제가 됐던 히말라야 준봉의 8천미터급 설산이다. 또 작년 산악인 박영석 씨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하산 중 실종된 곳이다. 안나푸르나라는 이름은 네팔어로 ‘곡식의 여신’이라고 한다.

8천미터 높이에 만년설이 뒤덮인 산이 ‘곡식의 여신’이란 게 얼른 이해가 안갈테지만 따지고 보면 설산의 만년설 때문에 계곡이 마르지 않고 거친 땅을 적시기 때문이다. 이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서장성의 포도를 살찌게 하고 하미의 수박을 세계 최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안나푸르나란 이름이 곡식의 여신인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중국의 전설에 곤륜산이란 산이 등장한다. 곤륜산이 어느 산을 가르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산꼭대기에 ‘쌀나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벼 화(禾) 자를 보면 나무 목(木)에 삐침하나가 올려져있다. 즉 나무에 이삭이 달린 모습이다. 곤륜산은 신의 영역이다. 서왕모가 살던 곳이고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은 동방삭이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그렇다면 신들도 인간이 먹는 쌀과 과일을 먹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호시탐탐 신의 것을 훔쳐다가 먹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차츰 인간도 쌀이나 과일나무를 심고 그것을 추수해서 먹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신화는 신농씨라고 하는 반인반수의 신이 그것을 알려 주었다고 전한다. 신의 소유인 禾(화,신격)가 인간이 농사지은 稻(도, 인격)로 전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벼 稻(도)자는 절구에 넣은 벼를 의미한다. 더 나가서 쌀 米(미)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쌀알을 의미하고 소화가 되어 몸 밖으로 나온 것(糞)은 米의 다른(異) 모습인 것이다.

신의 영역은 자연의 모습이고 성스러운 곳이다. 쌀나무는 성스러운 것이다. 신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니 무엇보다 더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뱃속에 들어와 소화가 돼버린 쌀의 다른 모습은 구린내가 진동하는 것이다.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 오면서 성스러움은 자취를 감추고 서로 더 먹으려고 넘보고, 빼앗고, 싸우고 하다 보니 인간만사가 똥같이 돼버렸나 보다.

농식품부의 쌀직불금시행령 개정을 보며 인간사에 접속한 쌀의 문제가 이렇듯 꼬이고 꼬인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신의 부재와 경멸에 있다. 신을 경멸하는 만행들로 정책이 실행되는 한 쌀의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앞서고 만다.

안나푸르나가 곤륜산인지는 더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안나푸르나나 곤륜산이나 인간의 대지를 적시는 강의 시원임은 분명하다. 또 거기에 대한 믿음과 경외감은 사람들의 삶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쌀을 비롯한 곡식에 대해 경외감의 신을 만들고 그 경외감만큼이나 한 주먹의 쌀에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하려는 자세를 가졌다. 어쩌면 모내기를 혼자 할 수 없도록 한 것도 신의 장치였는지 모른다. 남의 몫을 가로 채려는 욕심이 정당화 되는 세상에 신의 목소리를 내 봤자 그것을 알아들을 인간이 많지 않다는 것에 탄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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