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이야기

  • 입력 2012.07.23 09:14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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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주일 동안 밤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남이 쓴 글을 읽었다. 나도 책읽기라면 엔간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아주 고역이었다. 장편소설이 열 개, 중단편 소설이 오십 편이었으니, 거의 일 년 동안 하는 독서량에 버금가는 양을 읽어치운 셈이다. 그것도 종이에 활자로 찍힌 게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로 읽었다. 사실 나는 모니터로 긴 글을 읽는 게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읽기를 해낼 수 없다. 아직 종이가 훨씬 친숙한 아날로그 세대인 것이다.

내가 고역의 독서를 감내해야 했던 이유는 어느 문학상의 소설 부문 예심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60편을 읽고 5편을 본심에 올리는 게 내 임무였는데 나 역시 소설을 써서 투고해 본 경험이 있는 터라 소설가 지망생들의 열정과 노고가 담긴 원고를 아무렇게나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여러 가지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다지 유명한 문학상도 아닌데 이토록 많은 응모작이 들어오는 게 첫 번째였다. 예심을 맡은 두 명이 나누어 심사를 했으니까 내가 읽은 것의 두 배쯤 되는 양이 응모된 것이었다. 수백 편이 들어오는 신춘문예야 전국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목을 매는 데니까 그렇다고 해도 별로 공고도 하지 않은 문학상에 응모자가 이토록 많다니. 나이 어린 학생부터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심사를 맡게 되면 은근한 기대도 품게 된다. 혹여 눈에 확 띄는 작품이 있어서 제대로 된 소설가를 내 손으로 처음 등단시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올해도 능숙한 솜씨를 자랑하는 한 작가가 있었고 나는 제일 먼저 그 작품을 본선에 올렸다. 또 다른 기대 하나는 농촌과 농민을 다룬 소설을 고대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농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사라져버렸다. 한 때는 우리나라 소설의 주류를 형성하기도 했던 농민문학이 이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농촌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덜 떨어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기 일쑤고, 문예지들도 농촌소설을 싣는 것을 구더기 피하듯 하니 실로 한심한 지경이다.

소설이란 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농민들 역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계급인데 소위 작가라는 자들이 어찌 이토록 농민 이야기에 관심조차 없는지 분노가 일 정도이다. 해봤자 괴로운 이야기이고 괴로운 이야기를 읽어줄 독자도 없을 테니 모두들 텔레비전 드라마 비슷한 불륜이나 비틀린 관계, 쥐뿔 들여다 볼 것도 없는 내면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다. 명색이 소설가이면서도 나는 우리나라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엄마를 뭐시라 하는 소설을 대여섯 장 넘기다가 거의 구토를 할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의 작품에서 다들 외면하는 농촌 이야기가 한두 개 쯤은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모든 투고작을 읽었다. 그리고 딱 한 편의 농촌소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대란 수준으로 일어났던 구제역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단편소설이었다. 줄거리는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로 힘겹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고향집에서 키우는 송아지가 구제역 증상을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시름에 빠진 부모를 찾아가서 겪은 며칠간의 이야기다. 구제역이 한 마을의 사람들을 어떻게 갈라놓고 서로 간에 깊은 상처를 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농촌에 살아도 우리 마을은 구제역이 비켜간 터라 나도 그토록 큰 상처를 남겼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도시 사람들이라면 더욱 충격을 받을만한 내용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본심에 올렸다. 워낙 뛰어난 소설이 있어 본심에서는 뽑히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누군지 모를 그 젊은 작가 지망생이 부디 실망하지 않고 정진하기를 빌었다. 농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계급이며, 농민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끊임없이 쓰고 기록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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