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를 축소하고 호도하는데 연구기관이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원장 이동필)은 최근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심하지만 관수시설과 농민들의 가뭄 대처능력 향상 등으로 농산물 수급의 심각성이 적다고 지난 달 25일 밝혔다.
이는 ‘최근 가뭄에 따른 주요 농축산물 수급동향과 전망’을 주제로 농식품부에서 브리핑한 내용이다. 농경연은 전국 모내기 상황이 25일 현재 98.5% 진행됐다며 충남지역의 경우 용수부족 면적은 0.4% 미만으로 미미한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2012년산 쌀 수확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전망이다. 감자는 가뭄으로 작황이 평년보다 부진하나 재배면적 증가로 생산량은 평년보다 다소 증가했다고 전했다. 고추, 마늘, 양파 등에 대해서는 품목에 따라 단수 감소, 구 비대 불량과 같은 제한적 피해를 언급했다.
하지만 타들어가는 농촌현장의 실제상황은 이보다 심각하다. 농민들은 “어느 품목 할 것 없이 어렵다” “밭에 물 푸느라 아우성”이라며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 박형백 씨는 가뭄 피해에 대해 묻자 첫마디가 “심각하다”였다. 박 씨가 말한 대표적인 피해품목은 감자. 수확량이 예년에 절반도 안 될 정도여서 감자농가들의 소득도 대폭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감자를 캐고 바로 콩을 심는데, 올해는 콩을 심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전했다. 괴산을 대표하는 ‘대학찰옥수수’ 또한 이제 막 알이 차는 시기인데 너무 가물어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팔지 못할 걸 예상한 농민들 중에는 낫으로 베어냈다는 전언이다.
인근의 충주시 수안보의 옥수수 재배 농가들도 같은 입장이다. 수안보 살미대학찰옥수수작목회 신승창 회장은 “물을 퍼 대는 것도 한계가 있고, 우리 작목회 100여 농가 중 상당수는 연로한 회원들이라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태”며 “그나마 물도 없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대학찰옥수수는 7월 중순부터 수확하는데, 20~30% 수확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물을 대준 농가의 수확량 감소분으로, 물을 대지 못한 농가는 이보다 더 피해가 클 전망이다.
과수농가의 경우도 가뭄에 고온까지 덮쳐 과실이 크지 않아 걱정이다.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속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안 와 당도가 높아질 거라는 얘기를 한다”며 “모든 농작물은 생육기에 물도 잘 돌고 영양도 잘 돌아야 품질과 수확량 모두를 만족시킨다”고 말했다.
한편 농경연은 25일 브리핑에서 가뭄에 따른 축산업의 영향에 대해서도 전망을 했다. 특히 한우의 경우 “고온은 큰 문제가 안 되며, 가뭄으로 축사 바닥이 건조해질수록 소 사육여건은 오히려 좋아”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흘 후인 28일 국립축산과학원은 “비육중기에 혹서를 겪는 한우의 경우 스트레스로 육질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며 사육농가의 주의를 당부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농경연의 브리핑 내용을 가볍게 뒤집었다. 한우시험장 관계자도 “고온이 오히려 사육여건을 좋게 한다는 설명은 한우 사육 현장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원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