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농정’ 3년 만에 실패 자인

적자내는 사업자 속출
계속되는 질타에 신규 예산 없어… 뒤처리는 지자체 몫

  • 입력 2012.07.02 08:46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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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농업계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추진한 초창기 농업정책이 불과 4년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2009년 출범한 시군유통회사가 그것이다.

당시 전국에 ‘1시군 1유통회사’를 만들겠다던 포부는 어디가고 지금은 2009년부터 2010년 두 해에 걸쳐 설립한 12개의 시군유통회사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가운데 1개 유통회사는 모든 사업을 청산했으며, 또 다른 곳은 어떤 정부지원도 받지 못한 채 시군유통회사 자격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군유통회사란 마케팅 전문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해 전문경영 체제를 갖추고 농어업인과 농·수협, 시·군이 출자해 설립한 농수산물 판매 전문회사를 말한다.

시군유통회사 설립 계획에 농업계 ‘잡음’
정부, 농협에 연합사업단 설립 자제 공문까지

2008년 시군유통회사 출범 소식에 농협은 난색을 표하며 반대에 나섰다. 당시 농협이 추진 중이던 ‘전 시군 1개 연합사업단 육성’ 계획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농협의 반대에도 정부는 농협중앙회에 ‘시군유통회사가 설립된 시군에는 농협연합사업단이 신규로 설립되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하며 결국 시군유통회사 출범을 강행했다. 당초 시군유통회사의 설립 목적은 열악한 기존 산지유통조직을 규모화 하는 데 있었다. 산지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 농수협과 영농조합법인, 지방공기업 등이 대부분이 영세해 거래 교섭력이 부족하고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계획한 시군유통회사의 조직형태는 주식회사형 농업회사법인 또는 상법상 주식회사로 하되, 지자체 및 농어업인의 출자금이 각각 총 자본금의 4분의1 이상씩 되도록 의무화하고, 그 외 자본금의 2분의1은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는다.

또 설립당시 현금 자본금을 30억원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CEO는 유통분야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농업CEO 인재풀’에서 선임토록 하고, 이사의 수를 3∼5인으로 제한하면서 기존 산지조직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지역에서 생산된 주요 농수산물을 원활하게 조달,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 농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9년 시군유통회사가 결국 출범했다. 그리고 현재, 12개 시군유통회사 가운데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손에 꼽는 수준이다.

정부지원금은 5년간 1개소당 20억 원이며, 원물확보자금은 산지유통종합평가 결과에 따라 500억원 이내로 3년 동안 1~3%의 금리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2010년 사업자 선정을 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0년 신규 시군유통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검토 중이었던 9개 시군 가운데 8개 지역에서는 이미 농협의 연합사업단이 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농협과 정부의 충돌은 예상되는 시나리오였다.

그 당시 강기갑 의원은 “시군유통회사는 산지의 기초조직 육성 없이 정부 지원을 통한 자본금 확충으로 대규모 유통회사를 지향해 사업 부실화가 우려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부의 시군유통회사 설립 중단을 주장하기도 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농협법 개정 이후 산지유통활성화를 위해 연합사업단과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육성해 오고 있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시군유통회사를 들고 나와 산지유통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농협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농협은 이미 연합사업을 하고 있었고, 조합공동사업법인도 정부가 형식적으로 강하게 밀어붙여서 법인화 시킨 것”이라며 “그런데 옥상옥으로 시군유통회사를 또 만들겠다고 하니 서로 경쟁을 하자는 것인지, 힘을 합치자는 것인지, 정부의 정책이 대체 뭔지 혼란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불안감이 현실로… 무너지는 시군유통회사
농협 “결국 불필요한 절차만 더 만든 것”

농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9년 시군유통회사가 결국 출범했다. 그리고 현재, 12개 시군유통회사 가운데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손에 꼽는 수준이다. 2009년 고흥, 보은, 완도, 의령, 합천, 화순 등 6개 시군에 처음으로 시군유통회사가 설립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고흥, 보은, 의령, 합천, 화순 5개 시군에서는 이미 농협연합사업단이 운영 중이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나눠먹기’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군유통회사가 지역농협 등 기존 산지조직과 협조하는 형태가 아닌, 개별 사업을 하면서 경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운영 실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일부 시군유통회사는 기존 산지조직과 손을 잡으며 대형 유통회사로 키웠지만, 남은 시군유통회사들은 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에 따라 일부는 청산절차를 밟았으며, 현재까지도 청산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는 곳도 상당수다. 

그러나 시군유통회사에는 지자체와 농협, 농민들의 지분이 들어 있어 청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돌려줄 최소한의 자금마저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비록 소액일지라도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투자한 농민들은 지금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2010년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농수산물유통공사 국정감사에서는 시군유통회사의 비효율적 운영 방식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무소속 유성엽 의원은 “시군유통회사는 기존 산지조직의 육성에 혼란을 주고 상당수는 운영 실적이 저조하기 때문에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논란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케팅 능력을 제고하려고 전문가를 영입했지만 비농업인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현장감 부족으로 농산물 유통에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기도 했다. 

실제 시군유통회사 출범 당시부터 농업CEO를 둔 다는 사실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전문 농업유통 종사자가 아닌 인물들이 대표자리에 오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 보듯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시군유통회사를 처음 주장한 정운천 농식품부 전 장관은 “정부가 55세 정도의 대기업 퇴임자들을 발굴해서 우리 농업 MBA과정을 거치게 한 뒤 100명의 최고경영자(CEO)풀을 만들어 이들을 조직의 장으로 삼겠다”고 한 바 있다.

이같은 정 전 장관의 계획은 실현됐고 결국 2011년 논산의 시군유통회사 ‘팜슨’ 회장은 2011년 배임·사기죄로 구속됐다. 이달 초에는 고창의 ‘황토배기유통회사’ 대표도 비자금조성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이 들어가기도 했다.

농협 관계자는 “현재 실질적인 사업은 농협이 다 하고 법인만 유통회사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농협 사업이다”며 “결국 불필요한 절차만 하나 더 만든 것뿐이다. 손을 잡은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몰사업이 돼 버린 시군유통회사

국회·감사원 등에서 쏟아지는 시군유통회사와 관련된 지적에 농식품부는 시군유통회사 사업을 일몰사업으로 정하고, 2011년부터 신규 사업자 선정뿐 아니라 기존 사업예산도 편성하지 않기에 이른다. 2009년부터 운영된 6개 시군유통회사는 운영자금 20억 원을 다 받은 상태지만, 2010년 출범한 시군유통회사들은 마지막 남은 5억 원의 운영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농식품부의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면서 시군유통회사의 모든 예산집행 및 사후관리는 지자체의 몫으로 돌아갔다. 지자체의 자본이 들어가 있고, 출범 당시 산지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시군유통회사를 설립하겠다며 손 든 것도 지자체였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지원 사업이 없으면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결정한 지자체는 모든 시군유통회사 사업을 청산했으며, 남은 시군유통회사들은 농식품부의 산지유통활성화 사업으로 편입돼 운영되고 있다. 남은 이들은 그나마 시군유통회사 자격을 유지하면서 저리로 농업융자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12개의 시군유통회사를 끌어가던 농식품부가 불과 3년 만에 모든 예산을 없애며 일몰사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군유통회사의 결말은, 논란 속에서도 무리하게 출범했던 그 당시 이미 그려진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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