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시군유통회사

  • 입력 2012.07.02 08:41
  • 기자명 한국농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도 한사람 단위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농촌을 기업화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산업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젊은 CEO를 농촌에 영입해야 한다. 우리 산업이 일류 CEO를 세계시장에서 스카웃하고 키우고 하듯 우리 농촌도 기업화해야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현 정권의 초대 농식품부 장관인 정운천 전 장관에게 시군유통회사 설립과 관련된 업무보고를 받은 후의 답변이다.

이날 정 전 장관이 발표한 업무보고의 골자는 농식품 유통혁신을 위한 시군단위 유통회사 100개 설립으로, 농어업인과 지자체, 농수협, 기업 등의 출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전문 CEO를 영입, 연간 1,000억 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CEO출신들의 이같은 기업적 마인드는 농업의 기업화를 지나치게 강조했고, ‘옥상옥’ 사업이라는 농업계의 반발을 무시한 채 2009년 시군유통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영입된 CEO들은 경영에는 무능했고 비리와 부정에는 탁월했다.

당시 이미 연합사업을 하고 있고, 정부의 압박에 조합공동사업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던 농협의 반발은 단연 컸다. 여기에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군유통회사까지 들어서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군유통회사의 실질적 운영은 농협이 하게 되면서 불만은 고조됐다. 시군유통회사 이름만 빌린 또 하나의 농협 사업이 된 셈이다. 농협은 불필요한 절차만 하나 더 늘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결국 대부분의 시군유통회사가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부는 계속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청산작업에 들어갔으며, 또 일부는 사기, 횡령 등의 문제로 안팎이 시끄럽다. 시군유통회사 구조 자체가 해당 지자체의 특성과 맞지 않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화순군과 보은군의 경우 원래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아니다. 그런데 거대 유통회사가 들어서면서 그 크기에 걸맞은 농산물을 수집해야 했기에 삐걱 거릴 수밖에 없었다. 화순군은 함평에서 쌀을 사오려다 사기를 당하고, 보은군은 의성에서 양파를 사서 가격폭락으로 그 손해를 고스란히 물어야만 했다.

이후부터는 적자 행진이었다. 거대 유통회사 하나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자금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부실운영이 지속됐다. 결국 보은군의 ‘속리산유통’은 청산절차를 밟았으며 화순군의 ‘화순농특산물’ 역시 시군유통회사 청산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설립 당시 지자체장들의 잘못된 정치속셈이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사업 실패가 이어지자 정부는 결국 이 사업에서 손을 떼고 만다. 정부는 시군유통회사 사업을 일몰사업으로 정하고 2011년부터 모든 예산을 없애기에 이른다. 시군유통회사 출범 초반에 자금집행 등의 운영을 맡았던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역시 산지유통활성화사업에 이들을 포함시키면서 시군유통회사만의 특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이런 사업은 애당초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농민들의 출자금이 들어간 시군유통회사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농업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업경영 논리로 농업을 바라본 기업가 출신 대통령과 대학동문인 참다래 모종 수입판매상 출신 정운천 전 장관의 합작품 시군유통회사. 시행 3년 만에 실패를 자인했다. 이번 특집호에서 화순, 논산, 고창, 보은의 유통회사 사례를 살펴보면서 MB정부의 무모한 정책이 농민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