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노동자가 잘 사는 게 민주주의”

<13>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2012.06.18 10:44
  • 기자명 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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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을 역임한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강원도 춘천 출신인 정성헌 이사장은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는 가톨릭농민회,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0년 12월부터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농민과 노동자가 잘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대담=한도숙 사장, 정리·사진=최병근 기자>
 
한도숙=이사장님께서는 농민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을 해오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요. 이사장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정성헌=운동을 제대로 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한일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해 19살, 대학 1학년 때(1964년), 잡혀 들어갔어요. 제가 잡힌 곳이 보리밭이에요. 집에서 보리베다가 잡힌 것이죠.
그때 당시 우리나라 70%이상이 농민이었는데 지금은 7%가 안 돼요. 세월이 격변했단 소린데, 농업이 대우를 받던 천대를 받던 농업이 ‘근본살이’라는 건 틀림없어요. 근데 예나지금이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직접수탈에 의해 대우를 받지 못했고, 요즘은 자본의 수탈로 대접을 못 받아요. 사람으로 농업을 비유하면 조강지처입니다. 조강지처가 모든 것을 다 해놨는데 고마움을 모르지, 밥 먹고 살만하면 다른 짓 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색다른 해석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모습들이 민주화라는 의미와도 맞아 떨어지는 비슷한 모습들이 있을 거 같아요. 농사의 철학이 민주화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농사와 민주화의 연결고리라고 할까요.

=제가 가톨릭농민회 운동에 같이 합류한 게 70년이란 말이에요. 당시에는 정치권력의 특성상 농민들의 인권, 경작권이 제약을 받을 때였어요. 당시 농촌사회의 민주화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또 농민들의 조직인 농협이 오히려 농민을 통제했어요. 농촌은 민주화라는 철학이전에 삶의 문제였지요. 자본과 권력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게 농촌이었잖아요.
철학의 문제로 들어가면, 민주주의는 사상·제도·가치·생활이 민(民)이 주인이 되는 이념이에요. 70년대에도 농민, 80년대에도 농민이 다수였고, 중심이었단 말이죠. 70~80년대까지 농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농민·노동자라고 했죠.
이런 측면에서 농업하고 농민이 민주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에요. 깊이 생각해보면 민주주의가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려면 보잘 것 없는, 보일 듯 말듯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을 때 좋은 세상이란 말이지요.
결국 과수가 잘 달리고 농사가 잘 되려면 잘 보이지 않은 미생물이 활동을 해야 좋은 거잖아요. 농민, 서민들이 미생물과 같은 것이지요. 이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과일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 모든 게 적재적소에 자기역할을 하는 것이 농사고 이게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농민운동, 농민시위는 우리의 생존권 문제를 요구하는 것 외에도 많이 있었죠. 이런 것들 모두가 민주화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정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 중에 농민부문, 농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평가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요. 농민운동이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와서 농민운동 부분을 봤는데 첫째는 (자료정리가)제대로 안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고 두 번째는 나온 자료도 사실과 다른 게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야기 했어요. “사실이 아닌 게 있다”고요.
사실이 다른 게 어떤 거냐면 현장에서 왜곡 됐다고 봐요. 70년대 하반기부터 80년대 6월 항쟁까지는 내 기억용량에 있는 게 제일 많을 겁니다. 전국을 다 다녔으니까요.(웃음)
1986년에 미국담배 시판을 반대하는 운동은, 이념의 안경으로 써서 잘못된 글이 많아요. 소몰이 시위도 폭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닙니다. 1984년부터 소 값 폭락 문제를 감지하고 가톨릭농민회 차원으로 조사를 했어요. 조사과정이 시위를 조직하는 과정이나 다름없죠. 형식적으로는 자연발생적이지만 상당히 조직적이었거든요. 이런 걸 잘 모르지요.
이런 내용들이 정리가 안 되어 있더라고요. 직접 현장을 겪은 사람이 제일 정확한 사료잖아요. 그 사람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념의 안경으로 해석해서 잘못될 수 밖에 없어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농민운동이 차지하는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보시는 건가요?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려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는데, 농민들이 중심이 돼서 시군지부 60개를 넘게 만들어요. 이런 것을 의도적으로 빼는 사람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농민들의 혁혁한 투쟁을 인정하자는 건데, 이를 빼고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간단 말이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60, 70개 지역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의 함성을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농촌·도시 지역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운 건 중요한 건데 농촌지역에서 싸운 건 다 빼버린단 말이지요.

=국민의 정부 들어서 사업회가 만들어졌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국민의 정부 시절 법에 의해 사업회가 만들어 지고 예산도 지원돼요.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 예산은 좀 줄었지요. 예산 줄어든 것은 개의치 않고 일을 제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업회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작년부터 한다고는 하는데, 상당히 탈바꿈을 해야 해요.(웃음)
그동안 사업회에서 기념과 계승사업을 하고 있어요. 나는 기념과 계승은 기본사업으로 해야 하고 발전 쪽으로 사업을 더 해야 해요. 보다 더 현장에 가까이 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방자치 협동조합, 좋은마을 만들기 등 자꾸 풀뿌리 민주화 쪽으로 가잖아요.

▲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농업이 ‘근본살이’라는건 틀림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시는 도중에 전국농민회총연맹 결성이 됩니다. 당시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김상덕 가톨릭농민회 전 회장에게 “이제 한국의 농민운동이 하나로 크게 되어야 할 때가 됐고, 그게 되도록 돕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전농에 들어가서 감투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 가톨릭농민회가 농민운동의 총역량이 60% 정도 되니까 우리가 감투를 쓰면 분파가 되기 때문을 우려했던 거죠.
전농에게 대중운동을 맡기고 가톨릭농민회는 다시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돌아왔어요. 정치투쟁 등은 전농이 하고, 우리는 그의 일원이면 된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래도 대중적인 운동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에요. 가톨릭농민회에서 우리밀살리기운동을 결의해서 초대 본부장을 했지요. 1998년에 본부장을 끝내고, 2003년에 위암에 걸렸지요.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진짜 운동 가짜운동 이야기를 하셨어요. 지금 현재 가농도 그렇고 전농도 그렇고 농민단체들도 그렇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고 있단 생각은 안 하셨는지요.

=좀 전반적인 운동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운동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봐요. 안팎의 요인이 있겠지요. 물론 자본의 지배력이 지나치게 강대해졌고 세계화된 게 원인이겠지만, 내부가 반성할게 많다고 봐요.
통합진보당사태도 보수언론의 공격이라고만 보지 않아요. 진짜 반성해야 해요. 난 농민운동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다른 운동은 권력화 되어 있어요. 농민운동은 권력화가 될게 없잖아요. 노동운동은 돈이 많이 되잖아요.
노조 전임자를 대폭 축소하는 법이 통과되니까 노조에서 반발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이게 일터를 벗어나서 사무실로 온 거란 말이죠.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짜 전임자는 몇 명 있어야 하고, 오전 근무하고 오후에 노조 일을 하면 돼요. 인간은 노동현장을 떠나면 동료를 관리의 대상으로 보게 돼요. 진정한 노동운동이 되려면 반은 육체노동하고 반은 정신노동을 해야 해요.

=많은 운동 선배들이 지쳐있어요. 하지만 또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요. 농민운동의 선배로서 농민운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후배, 후세대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한마디 해주시죠.

=후배들에게 격려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농민들이 줄어들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지역에 다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빨리 찾아서 같이 가려는 고민을 해야 해요. 농민운동을 할 만한 사람은 다 있는데 못 만나고 못 찾을 뿐이지요. 농민을 믿는 부지런한 마음이 있어야 해요.
2030년 생명위기가 본격화 된다고 하면 생명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이 농업이에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10년 준비하면 농자천하지대본인 사회를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고, ‘통일 신문명’ 국가를 건설하는데 농민운동이 어떤 위치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정리해야 해요. 남북통일을 이루는데 농민운동이 당당하게 감내해야 한다고 봐요.

=통일신문명 시대를 맞이하고 열어나가자는 의미 있는 말씀이신데.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어요. 많은 농민들이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지요. 정신은 이렇게 되어있는데 현실적 굴레는 그렇지 않아요.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730만 초중고 학생들을 바보를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전 교육개혁이라는 말을 안 써요. 천지개벽하듯 교육도 개벽하지 않으면 안돼요. 인간은 독자적 존재에요. 나를 대신 해줄 사람은 없다는 말이지요. 우선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교육이 돼야 해요.
두 번째는 ‘사회적존재’는 결국 협동하라는 건데 이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무한경쟁’ 얼마나 끔찍한 말이에요. 결국 이 경쟁의 끝은 죽음이에요. 지금 요구되는 건 경쟁 일변도가 아닌 ‘협동적경쟁’ 교육내용이 있어야 해요. 사회적 존재로서 협동과 경쟁을 담는 교육이요.

=중국의 사마천은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이라는 거지요. 남은여생 건강 잘 지키시고 입덕·입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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