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20 유감

  • 입력 2012.06.18 09:48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13일부터 열흘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유엔지속가능개발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를 리우+20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리우선언 2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회의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회의는 지난 20년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각국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제21에 대한 숙제검사를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숙제검사는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들이 모인 리우+20 한국민간위원회는 지난 3월 22일 발족선언문에서 “리우+20의 두 가지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지속가능발전 및 빈곤퇴치 관점에서의 녹색경제’는 환경-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사회적 형평성을 배제한 채 수단으로서의 ‘녹색경제’를 강조하며 오히려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위기를 야기한 신자유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녹색경제에 대한 논의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녹색분칠(Greenwash)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애초 ‘지속가능개발’을 주제로 하는 1992년의 리우선언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개발격차로 인한 논란 속에 타협적으로 등장한 단어에 다름 아니다. 즉, 생태·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기득권, 선진국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민간단체와 개발도상국의 서로 다른 의미의 부정적 시각 속에서 지구환경의 개선이 아니라 지구환경의 현상태 유지를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타협은 결국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인 2012년 결국 ‘녹색성장’의 다른 이름인 ‘녹색경제’라는 괴물을 낳았다. 유엔은 놀랍게도 녹색경제와 자유무역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무역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관점에서 녹색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 예로써 친환경적 상품과 용역의 무역을 활성화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통해 친환경기술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녹색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각국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는 도하개발아젠다를 돕기 위한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유엔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그리고 이는 주요논의사항 가운데 하나인 식량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서 식량권을 인권의 하나로 규정한 이후 유엔의 태도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즉, 식량의 문제를 양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한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하건 전세계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생산하기만 하면 된다는 관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이번 회의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량분야에서의 목표 역시 생산량 증가, 단위면적당 수확량 증가와 이를 위한 과학기술의 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엔의 이런 태도는 결국 식량·농업을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틀 속에서 제외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유엔이 여전히 소농 및 여성농민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고 이를 위한 지분을 늘리겠다고 표방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없이는 이런 지분의 증가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환경·생태와 마찬가지로, 아니 농업 그 자체가 환경·생태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환경·생태가 무역의 대상이 돼서는 안되듯 농업·식량도 무역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1992년 이후 무역과 환경·생태는 항상 대립되어 왔다.

WTO 하의 무역분쟁 가운데 상당수가 환경적인 이유로 인한 수입규제를 무역장벽이라는 이유로 제소해 왔고 환경·생태는 무역장벽에 항상 패했다. 더 나아가 무역과 인간의 건강 역시 항상 대립해 왔고 분쟁마다 인간의 건강은 무역장벽 앞에 항상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논란이 지속되어 왔던 것은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환경·생태와 인간의 건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리우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고 실천하려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 20년,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 리우회의가 자유무역을, 신자유주의를 환경·생태와 인간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또 다른 20년, 어쩌면 200년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는 리우+20이 유감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