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食道樂)

  • 입력 2012.06.11 09:13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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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이곳저곳의 음식점 앞에 장사진이 쳐진다. 근처 사무실에서 밀려나온 사무원들인데 점심조차도 즐기는 자세다. 한 끼를 때운다는 칠십년 대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음식점 앞 줄서기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삼십대 처녀총각들은 물론이고 배불뚝이 중년들도 자연스레 대열에 끼어든다.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금강산이 아무리 좋다한들 배가 고프면 배고픔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란 요즘 시쳇말도 있다. 친구의 강권에 못이긴 척 마시는 한 잔 술을 그렇게들 말한다. 식도락은 좋은 먹을 것을 즐겨 찾는 일이라고 한다. 먹는 것의 절대성이 희박해지는 요즘 모든 먹는 것이 식도락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그 지방의 특산요리라는 것쯤은 상식이고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일이 됐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지렁이는 흙을 먹어야 산다. 바위에 붙어 살아가는 소나무도 갈라진 바위틈 어디에선가 흙속의 양분을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식욕, 성욕, 지욕의 인간 본성 중 가장 우선되는 것이 식욕이다. 옛사람들의 말에 사람이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고 했다. 먹는 것처럼 치사하지만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터에 목을 매어단 사람들이 그만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로 자위한다. 이치와 상황이 그러하니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먹거리가 어디서 나고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도통 없다는 것이다. 제 생명을 이어주는 먹거리가 음식점에 있고 돈을 주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씨앗에서부터 물, 바람, 농부의 땀, 지렁이와 베짱이의 노래 소리가 음식재료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사라진 채 오늘 점심은 어쨌느니 저쨌느니 강평으로 재잘 댄다.

들에 일을 나가면 광주리 가득 곁두리를 내왔다. 일꾼들이 배부르게 먹고, 지나가는 길손도 막걸리 한잔은 반드시 하고 갔다. 덩달아 아이들도 배부르게 먹었다. 과수원에서도 곁두리랄 것은 아니지만 새참을 먹는다. 간단한 떡이나 빵에 음료수를 곁들이지만 점심까지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보조이기도 하고 쉴 참이기도 하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냐 살기위해 먹는 것이냐는 오래된 질문이 지금도 부부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좀 더 나은 음식으로 잘 먹고 충분히 쉬자는 내말에 아내는 빨리 일하자로 응수 한다. 떡 한입을 베어 물고 다시 나무에 매달리는 농사일이 살기위해 하는 것인지 먹기 위해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 하다.

오랫동안 우리식당에서 점심을 만들던 장모님이 몸이 불편 하시단다. 대학병원으로 치료를 다녀야 해서 식당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점심이 걱정된다. 누가 잘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줄 사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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