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함께 숨 쉬며 사는 삶, 행복합니다

  • 입력 2012.06.04 17:28
  • 기자명 한숙희 순천시 황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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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느덧 길가에 하얀 찔레꽃이 산들바람에 수줍게 한들거리고 있네요. 앞마당에 탐스러운 작약꽃 빨간 장미꽃도 시샘하듯 만발하고 5월 한 달 내 비가 오지 않아 하늘만 쳐다보고 마음 조이는 이때 드디어 오늘 단비가 내렸답니다. 만사를 제쳐 두고 고구마도 심고 콩 모종도 심고 단호박도 심고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내 나이 벌써 팔순이 가까운 그렇지만 마음만은 30대 청년으로 전남 순천에서 밤, 고사리, 텃밭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도시생활을 했으나 40년 전 이곳에 땅을 구입해두었다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한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팔남매에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당신의 종자를 이어받아 심을만하다고 인정받아서 어머니 평생 씨받아 심어왔던 10여 가지 씨앗을 물려받아 지금껏 해마다 심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돈부 종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전국여성농민회 토종종자 자랑대회에 참석했다가 전국에서 가져온 종자들 속에서 찾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뵌 듯 너무 반가웠답니다.

또 여성농민회사업으로 동네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서로의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모아 도시소비자들에게 직거래로 보내는 언니네 텃밭 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동네와 집이 떨어져 있고 귀농을 한 탓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시끌벅적하게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랬더니 잔병도 없어져 병원에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어요.

농사는 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땀과 정성을 다하면 충분한 대가가 돌아옴을 체험하고 감사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얼마 후면 방학 때 우리농장에 찾아올 11명의 손자, 손녀들을 기다리며 땅콩, 야콘, 자외, 참외, 토마토, 옥수수, 고추, 가지, 수수, 조, 참깨, 들깨, 콩, 팥 등을 텃밭에 심었습니다. 도시 소비자들과도 함께 먹을 생각입니다.

요즘은 오전에 고사리를 뜯고 땅콩 밭을 매고 있어요. 땅콩 밭에 풀을 뜯으며 “너네가 간지러울 테니 내가 풀을 뜯어줄게”하면서 말을 걸어요. 그럼 대화하는 것 같고 재미있어요. 오후에는 산에 심은 4,000그루 밤나무를 관리하러 올라가요.

이 나무들은 제가 우리 영감이랑 1970년도에 심어서 40년이 넘게 키웠어요. 요즘은 1년, 2년 자꾸 나무들이 병들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또 제가 나무들한테 말하죠.

“너하고 나하고 땅하고 같이 자랐는데 너도 병이 들고 나도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힘이 든다.”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눠요. 그럼 영감이 옆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을 주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나무들이 웃으면서 나를 반기는 것 같고 “잘 커주라. 잘 커주라”하면 내 말을 듣고 잘 자라주는 것 같아요.

이 밤나무들은 이제 아파서 대체작물로 상록수를 심었어요. 나무랑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흙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힘든지도 모르겠어요. 나무 크는 재미에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땅이 5만평인데 너무 크지만 영감이랑 나랑 입는 것 머리하는 것 아껴가면서 퇴비하나 더 주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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