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우유의 날

  • 입력 2012.06.04 09:4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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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우유의 날(6월1일)이란다. 우리나라에 젖을 짜는 홀스타인종의 젖소는 1902년 농상공부기사로 있던 프랑스인 ‘쇼트’에 의해 처음 도입 됐다. 그 후 우리나라 낙농업은 주로 도시근교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지금이야 도로교통과 운반저장시설이 좋아서 산간오지에서도 낙농업을 할 수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서울의 강남지역과 안양지역이 거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걸어서 시오리길을 타박거리며 걸어가면 신작로에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우유차가 달려온다.

신작로까지 우유통을 서너개씩 리어카에 싣고 나와 기다리던 목부들이 우유를 실어주던 모습이 아련하다. 한 농가당 너 댓 마리 많아야 열 마리를 넘지 않는 수준이고 젖을 짜는 것도 손으로 짜던 시절이었다.

집 가까이 아주 규모가 큰 목장이 있었다. 강물이 불어나자 우리집 앞 동산으로 소들이 피난을 왔는데 서양의 어느 나라 풍광이 연출 되는 모습이었다. 양동이를 받치고 앉아서 우유를 짜는데 우유를 내가지 못하니 필자를 비롯한 동네 꼬마들이 실컷 마시고 설사를 해대는 통에 고생을 했던 웃지 못 할 추억이 있다.

우유의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우유마시기 캠페인을 펼치는 것을 보니 우유를 많이 먹지 않는 탓인가 하고 의구심이 든다. 또 언론들은 출산율이 낮아져서 우유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른데 있다. 한·미, 한·EU FTA체결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시유가 수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값싼 탈지분유가 우유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우유는 유목민들의 양식과 같은 것이다. 역사를 보면 기원전 3500년경에 유프라테스의 유적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성경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우유를 일상생활로 생산 소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酪(낙)이라는 이름으로 우유음식이 존재했음을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유우소라는 목장을 설치하고 왕실에 조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유우소의 폐단이 극심하여 백성들을 괴롭힘으로 이를 폐지했다고 한다.

그래도 왕실이나 고관대작들은 타락죽을 만들어 보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타락죽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허약한 사람이나 바쁜 사람들의 아침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필자도 80년대 낙농업을 했다. 십 수 마리를 기르며 하루 200kg을 납품하는 정도지만 현금회전률이 좋고 송아지가 태어나면 보너스 받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정리하고 말았다. 구조조정의 회오리는 규모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투자비용도 문제지만 실은 소에게 매달려 살아야 하는 고달픔이 낙농을 그만두게 하는 중요 요인이었다.

명절이 되거나 집안 행사 등에 불참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좀 나은지 모르지만 낙농은 까탈스럽고 힘들고 여유가 없는 직업이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생산된 우유가 남아돈다니 걱정이다. 우유의 날이 낙농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돼야 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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