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농사짓는 것 불행 아냐”

<12> 조충렬농민 전북군 군산시 대야면

  • 입력 2012.05.21 13:12
  • 기자명 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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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을 살아온 동구밖 느티나무는 가지가 온통 구불거리는 논두렁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 느티나무를 보며 늙어가는 촌로의 지친 몸뚱이도 논두렁같았다. 그렇게 나부뫼를 지키며 스러져가는 큰들을 바라다 본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핏덩이가 넘어온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기우는 해와 늙어가는 자신과 쇠락해가는 농촌에 각혈처럼 토해낸 글 편이지만 마음 같지 못함을 한탄할 뿐이다. 이번호는 군산 대야면 나부뫼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조충렬 님의 글로 대신한다. 〈대담=한도숙 한국농정신문사장·정리=최병근 기자〉

한도숙=오래전부터 글쓰기를 해오셨군요.

조충렬=94년에 처음으로 시집을 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남새밭, 쟁기질 등 농경과 관련된 옛 문화를 잃어 버리겠더라구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선생님이 쓰신 ‘생명의 땅’이라는 글을 읽어보니까,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농업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풀어 놓으신 것 같아요. 고희가 넘으신 상태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느끼는 점이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글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즘 글 쓰는 유명한 사람들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관념적 개념으로만 표현하지 정서적 이야기가 없어요. 우리가 이런 글을 써도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 글을 발표하고 싶어도 발표하지 않는 겁니다.

=선생님 글을 읽어보니까,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점, 화도 나는 것을 글에 쏟아 내신 것 같아요. 이 아픈 농촌에 울분만 토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 아픔과 고통들을 뒤로하고, 선생님의 남은 여생을 앓고 있는 농촌을 위해서 고민 하실 것 같아요.

=논 한필지에 쌀 한두 가마 더 나온다고 해서 농촌이 변하지 않아요. 농민을 대변할 수 있는, 농민을 보호할 수 있는, 열심히 뛸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해요.

=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 아직 이 땅의 농업을 지켜야 한다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그분들에게 위로를 드릴 수 있는 입장인가 모르겠어요(웃음). 인간은 원래 땅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농사짓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선현들의 말씀이 중요하게 와 닿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람들이 너무 이문에 심취하다 보니, 세상이 많이 망가져 있고, 가장 중요한 생명을 유지하는 먹을거리를 담당하고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천대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모쪼록 선생님께서 글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 하고 계시는데, 이 지역을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 전북 군산시 대야면의 조충렬 씨(사진 오른쪽)와 한도숙 한국농정신문 사장이 지난 15일 군산시 대야면 조 씨의 자택 서재에서 광야를 가리키며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생명의 땅

서산마루 곱게 핀 붉은 노을 빛 어둠 발에 고개 숙여 저물어들면 논밭 일에 지쳐진 임의 발자국 소리 오시는 골목길에 아직도 느낄 듯 당겨온다

수 십 년 한세월 땅은 농사꾼의 생명이라 못줄 꽃에 허리 굽혀 수 천 번 뜨거운 뙤약볕 풀 메기 세 벌 지심 김치 막걸리에 허기진 배 채우고 흙탕물에 범벅 진 광목 옷 뭉클어 진 쪼들게 고생한신 부모님 메이게 생각나

별빛 세며 물자세로 밤 물 품으면 어머님 때 맞춰 새참 머리에 이고 등잔 호롱불로 더듬어 십리 길에 치마 끝 밟혀 미끄러져 넘어져도

아버님이 볼세라 흔연히 감춰 서둘러 일어선다 두툼한 고기 몇 점 소주 한잔 드시면

그 고생 다 잊은 듯 내외분 웃음소리 그리도 다정할까

통메산 둘레에 진 낙엽에 저문 어둠 발이 그려지는데 황금 들녘 논길에 지게목발 두드리며 줄줄이 볏단 짊어진 농군의 흥겨운 노래가락 시린 겨울 홀테 밑 사르륵 벼 떨어지는 소리 열 손가락 마디마디 묻어 낸 옛 일 떠오른다

짚불 연기 차린 저녁상 김치 시래기 된장국은 진수성찬 올망졸망 새끼들 웃음소리 가시면 지쳐 고개숙인 졸음 살 갓 꼬집어 내쫓고 밤새내 서방님 외출 옷 다듬이질 방망이 소리 어머님 한 맺힌 울먹인 콧노래 어찌 내 잊고 살랴

장독대 큰항아리에 백기사발 열 번 씻어 정수물 모셔놓고 두 손 합장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내 새끼들 그저그저 모 성이

잘되게 해주옵소서

눈 내리는 한 겨울 시린 찬물로 목욕 재배하고 두 눈감고 내 가정 탈 없이 빌고 비는 조상님 그 정성 모퉁이 구성에 풍겨진 이 터진

흙 묻혀 난 싫다 몇 집 건너 공허한 빈집으로 다 떠나버린 텅텅 빈 쓸쓸한 농촌마을 집집 갓난애 울음소리는 먼 옛 꿈 이야기 농자천하지대본이 어쩌다가 말본이 되었는가

삽 한번 안 쥐여본 꼬부랑 영어양반님네가 TV에 농업문제 이렇쿵 저렇쿵 선거철만 되면 서민 위한다는 후보자 화려한 공약은 먹다 남은 쓰레기통에 넣고 억 억 먹고 빛깔 내여 화려하게 사는 분네가 가슴 옥 조인 농사꾼의 속사정 어찌 그대 알꼬 겉보기 화려하게 뜯어보면 어- 어 빈 털터리네 입 벌리면 국민, 제발 국민 위해 그 말만은 접어두소

선거 때는 우리 국민 끝나면 내 몫 챙기기

의원 수 한 명 늘려 300명 한명에 32억 세금 또 올라 한통속 짝짝궁은 만장일치 따로 몫 두 길은 싸움박질 선거끝 얼씨구 잘들 노시게

전당대회 너 돈 뿌렸다고 온 동네 씨끌씨끌 야단법석 임자는 깨끗했어 물어 볼일

네 가슴 손대고 생각해 보우 동네동네 까보면 똑같지 뭐

흙 파야 사는 팔자 내 팔자대로 살아봄세

바지가랭이 흙에 젖고 짐 들이에 두 무릎 삐걱거리는데

흙이 싫다 다 떠나버린 늙은이 세상 선거철만 헛배부르는 한숨짓는 농촌

젊은이여 어머님 품 생명의 땅 고생타 훌훌 다 떠나려는가

석양에 논밭 가리 절그렁 소방울 소리 떡 한쪽 담 넘겨 정 다운 시골

다듬어 키워주신 임의 영혼이 얼룩진 땅 가난에 쪼들어 고생스러워도 조상님 숨소리 범벅진 땅이라

어머님 품 생명의 이 땅

나 마저 버리고 떠나면 섭섭해 어찌나 해 당신 품에 매달려 난 살래

▶조충렬 씨는 누구?

전북 군산시 대야면에서 1만2천평의 농사를 짓는 조충렬 씨. 그는 전주고등학교 3학년에 당시 희망직업 조사에서 ‘농민’이라고 적었다. 그는 서울대 농과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3학년에 가정사로 인해 전북대 법대로 편입을 하게 됐다. 대학 시절 방학때 마다 농사일을 도와 ‘평생 농사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1934년에 태어나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겪은 그는 올해 78세다. 조 씨는 현재 슬하에 3남2녀의 자녀를 두고 6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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