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됐다. 농민들은 겨우내 묵혀뒀던 농기계를 손질하고 새롭게 피어나는 모종들을 돌보고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의 농사는 거의 기계화 됐다. 논을 가는 일부터 벼를 베는 일, 수확 후 뒤처리까지 기계가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무리 해서라도 농기계를 살 수밖에 없다. 트랙터 한 대는 5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값비싼 농기계지만, 실제 사용되는 날은 일 년에 60일도 채 되지 않는다. 또 구매비용을 갚기 위해 많은 일을 하게 되고, 결국 기계로 인해 쉽게 하려는 일은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게 된다. 농업의 기계화는 농민들의 작업능력 향상 효과를 불러왔지만, 작업량을 늘이는 데도 한몫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무안의 농민들이 똘똘 뭉쳤다. 무안의 ‘토지영농조합법인(이하 토지법인, 대표 정영호, 사진)’은 농기계 공유화를 통해 영세한 농가나 고령화된 농가들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고령 농가, 소규모 농가에 큰 도움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당시 ‘농기계 임대사업’이라는 공약을 제시했다. 농민들이 가진 농기계를 농협이 사들인 후, 희망하는 농민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서 농가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농민들 처지에서는 농기계가 자산이자 자가용이라는 인식이 강해 결국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농기계대여사업’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농민들은 비슷한 시기에 용도가 같은 농기계 대여를 원하고 있어 대여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홧김에(농기계를)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토지법인은 55명의 조합원이 모여 농기계를 사서 영세한 농가, 노령농가,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로터리(땅 고르는 작업)와 벼 베기 작업을 대행해 주고 있다. 이처럼 농가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농기계가격고민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고, 불필요한 농기계 구매를 막는 것이 법인의 설립 목적이다.
정영호 대표는 “무안은 양파농사가 주산지고, 밭농사도 많지만, 쌀농사 또한 많이 짓고 있다. 언제부턴가 농촌에서 농기계를 사들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사실 마을에서 트랙터 한 대면 충분하다. 하지만 농민들은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등 기계들을 갖춰 놓고 쓰는 경향이 있다. 한 대의 트랙터가 보통 3만 평~6만 평 정도의 일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트랙터들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이득 없는 사업.
하지만, 지역변화의 역할 할 것
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대행사업’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 수익업자들은 평당 5-6만원의 작업비를 받고 있지만, 이들은 20% 저렴한 가격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이 사업이 올해 4년차에 접어들지만 겨우 근로자들의 인건비를 지급하는 수준이다. 농민들은 좋아하지만, 실제 우리들은 본전만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정 대표는 “이 사업은 농협이나 정부가 선뜻 나서지 않아 뜻있는 농민들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농협이나 군이 직접 나서 사업을 확대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법인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있다, 작년부터 우리밀을 재배해 생산·가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은 급식지원센터를 세워 관내에 로컬푸드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무안에서 만난 한 농민은 농사를 짓는 것이 농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것도 농업이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농업이라고 했다. 농사짓는 일이 익숙한 이들이 지역에 남아 새로운 도전과 대안을 꿈꾸며 무안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