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석문간척지 농민들 “올해 벼농사 짓겠다”

침수되거나 염해발생…타작물 간척지에 부적합
정부, 개선책 발표하며 수습…현장, “개선안 아니다”

  • 입력 2012.02.13 11:03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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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간척지 임대제도 개선책을 발표하며 지난해 정책실패를 일부 인정했지만 여전히 타작물 우선 기조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올해는 벼농사를 짓겠다”고 맞서고 있다.
8일 충남 당진시 석문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이 당진시내 모처에서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간척농지 임대제도를 벼가 아닌 타작물 중심으로 변경하면서 수확을 하나도 못했을 뿐 아니라 밭작물을 심기위해 간척농지를 개간하면서 비용이 들어가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어 왔다. 이 때문에 지난 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간척지 타작물 우선 정책의 폐해를 알리고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8일 당진 석문간척지 피해 농민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농민들은 지난해 타작물 재배로 수확을 하나도 못했다며 올해는 벼농사를 짓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1만 2천평 콩 심어 한 톨도 수확 못해

오상섭 씨는 지난해 마을단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1만 2천평의 석문간척지에 농사를 지었다.
오 씨에 따르면 kg당 1만2천원과 8천원 두 종류의 콩, 총 200kg을 심었다. 마을 주민 소유 트렉터 4대로 3일간 작업을 했다. 연료비만 특렉터 1대당 1일 30만원 이상 들어갔다.
1만 2천평 간척지에서 콩 수확은 얼마나 했을까?
오 씨는 “수확은 커녕 한 포기도 살아남은 게 없다”고 기막힌 대답을 했다.
“작년에 큰 비가 2번 왔는데, 비가 올 때마다 죽고 또 죽고…” 당시를 회상하는 오 씨는 혀를 찼다.
같은 조합원 이규상 씨도 “벼는 물만 있으면 농사지을 수 있는데, 간척지에 타작물을 심은 곳 치고 소득이 좋은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씨는 “내가 아는 집은 2만 4천평에 콩을 심었다. 비를 피해 드문드문 콩싹이 나왔는데, 며칠 수확을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염해로 말라죽어 수확작업을 해 봤자 품값도 안 나온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료작물도 습해·염해 속출
간척지에 사료작물을 권장하는 정부측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사례도 확인됐다.
호명도 씨는 38ha에 사료작물인 수단그라스를 재배했으나 “수확률 제로”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호 씨는 “47가구가 영농조합법인 만들어서 종자값 1천만원을 들여 사료작물을 심었다. 농기계 있는 사람은 농기계로 협조하고…마을사람들이 공을 들였지만 수확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호 씨가 속해 있는 영농조합법인은 조사료를 심기위해 포크레인 작업을 하면서 배수관 등 시설물이 망가지는 피해도 발생했다. 농민들은 간척지에 맞는 벼를 심으려면 배수로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데, 정부가 되지도 않을 타작물 권유로 벌어진 불상사이니 만큼 원상복구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해 간척지 임대제도를 영농계획이 이미 세워진 3월에 발표하면서 불거진 피해도 있었다.
송권성 씨는 총체벼 종자를 못 구해서 삼광벼를 사료용으로 심게 됐다. 송 씨가 농어촌공사와 계약한 시점은 지난 해 5월 13일. 벼 농사라 타작물에 비해 농사가 되긴 했지만 문제는 쌀로 판매하면 계약위반이기 때문에 사료용 총체벼로 판매해야 했다.
그러나 총체벼 수확기에 주변 배추밭에 물을 대는 관계로 질척해진 땅에 기계가 들어가지 못했다. 차일피일 때를 보던 작업은 너무 늦어저 결국 낟알이 여물도록 속만 태웠다는 것.
송 씨는 “40ha에 재배한 총체벼를 어디다 팔아야 할지…낟알이 딱딱해져서 소도 먹일 수 없는 골치덩어리가 됐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볏짚만 있다면 팔 수 라도 있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손해만 난 농민들은 작업대행을 해준 축협과 작업비로 실랑이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재용 씨는 “총체벼가 뭔지 몰랐는데, 정부 권장사항이니까 얼마든지 판로가 있겠다 생각했다”며 “책상머리 정책의 한계가 서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생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정책 담당자들이 혹독히 깨달아야 하는데..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만 같다”고 답답해했다.

 

간척지에는 벼농사가 정답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실패가 지역농민들의 경제적 손해까지 입게 만들었다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간척지의 특성을 무시한채 ‘쌀 감산정책’이라는 획일적인 목표로 억지 계약을 하게 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또 지난 해와 같은 실패를 번복할 수 없다며 올해는 정부 방침이 뭐든 간척지에는 벼농사 외엔 지을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명도 씨는 “농민들은 벼를 베기 전에 다음해 농사를 구상한다. 농사꾼이 일기 안 쓰고 적지 않아도 준비를 한다는 말이다. 지난 해 간척지 임대조건이 뒤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허둥지둥 농사만 지을 요량으로 정부정책에 동조했으나, 실패를 또 겪을 수 없다. 간척지에는 쌀 농사 외엔 지을 게 없다는 것이 지난 해 배운 뼈아픈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11월 간척지 임대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며 시행착오를 무마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현장 농민들에겐 여전히 답답한 대책이 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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