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업계 16년 담합에 성난 農心

부당이득 1조 6천억원…과징금만 800억원 이상
“배신감, 분노 느낀다” vs “부풀려졌다, 우리도 어렵다”

  • 입력 2012.01.21 10:42
  • 기자명 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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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올랐다더니, 농민들 고혈만 빨아먹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 공정위)가 지난 13일 화학비료 업계의 ‘16년 비료값 담합’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얻은 자와 잃은 자 그리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어 해결책이 필요하다.

16년 간의 담합 행위, 아무도 몰랐나

이번 사건의 발단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3개 화학비료 업체가 관행처럼 담합을 일삼아 오면서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16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빈번하게 비료값 담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이 뒤늦게 밝혀진 데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관리 소홀과 농협중앙회의 암묵적 동의가 있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와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이하 연초조합)가 발주한 화학비료 입찰에서 13개 업체들은 사전에 각 회사별 물량배분과 투찰가격 등을 담합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담합을 일삼았다는 사실은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번 사건으로 짐작케 한다. 담합에 참여한 13개 업체의 8개 품목은 100% 시장점유율을 보였고 담합의 결과로 16년 간 평균 99%이상 낙찰됐다.

또한 연초조합이 발주한 연초비료의 경우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 되는데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은 동부를 낙찰사로 정해놓고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형식으로 물량을 납품했다.

 

비료값담합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농협중앙회 자회사 남해화학 빌딩 전경

원자재 값 상승? “실제로는 기업 배 채우기 ‘꼼수’다”

이들이 가격담합을 통해 취한 부당이득은 16년간 1조 6천억원에 달한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농민의 피땀 어린 돈을 불법으로 갈취해 얻은 액수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농민들의 분노도 치솟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 이광석)은 “농민들의 농가소득은 감소하고 농자재 가격이 치솟아 부채는 쌓여 가는데 믿었던 농협이 자회사인 남해화학의 담합을 철저히 감시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농은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화학비료 값이 102%나 인상돼 농민들이 농협에 항의했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인상으로 비료가격인상도 불가피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가격인상의 실체를 알고는 배신감과 분노가 차오른다”고 대책 마련 촉구에 나섰다. 이번 사건으로 농협중앙회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고 농협중앙회 자회사에 대한 농자재 입찰비리, 업체담합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현재 전농을 비롯한 광주전남연맹, 부산경남연맹 등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격담합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어 파문은 자칫 들불 번지듯 일어날 조짐이다. 관련 농민 단체들은 농민 환원을 위한 국민소송 등 법적조치를 고려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의견 수렴, 구매제도 개선 노력

언론과 농민이 규탄에 나서자 농협중앙회는 지난 17일 ‘비료업계 과징금 부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농협중앙회 최도열 상무는 자회사인 남해화학의 가격 담합을 정말 몰랐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정말 몰랐다”고 주장했다. 농협중앙회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관리 소홀의 문제는 충분히 있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공정위 조사결과에 대한 해당업체의 이의신청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학계, 농민단체, 정부 등 각계 의견을 수렴,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비료구매제도를 개선해 농민들의 이익이 최대화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농협중앙회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이후 기존 관행 복합비료 대신 토양 검정에 의한 지역별 맞춤비료로 전환해 전량 입찰을 통해 구매하고 입찰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부당행위자 입찰참가 제한, 사전교육, 담합비리 신고제 등을 도입하겠다며 사건이 불거진 후에야 제도개선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농협중앙회는 화학비료업체들이 1조6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정확한 자료가 아니라며 금액 산출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그 금액은 공정위가 조사한 16년 분에 해당하는 것이지 단기간에 취한 것은 아니라고 감싸기에 급급했다.

비료업계, 담합은 인정! 그러나 “어렵다”

 비료업계와 비료공업협회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남해화학 관계자는 “담합한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공정위가 얘기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다”고 반문을 제기했다. 공정위가 발표한 부당이득 액수와 담합 내용에 잘못 파악된 점이 있더라도 비료업계의 담합문제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비료공업협회 측도 고심하고 있다. 비료공업협회 관계자는 “협회에서 정확한 결정이 나지 않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업체들이 1조 6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면 기업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부당이득 금액은 부풀려진 면이 있고 작년의 경우 업체 당 100억원씩 손해를 볼 정도로 어려운상태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그는 “원자재 가격은 인상된 비료 값 102%보다 더 올랐었지만 농민들에게 비료 값을 낮춰 받았다”고 말하며 “업체 측의 잘못에 대해서도 해결 방안을 찾고 이런 것들을 해명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 당국의 대안과 업계의 자성 필요

치솟는 농자재 가격에 허덕인 농민들, 담합사실을 인정해도 회사는 적자를 보고 있을 만큼 큰 부당이득을 챙기지 않았다는 업계. 비료업계는 분명 담합이라는 불법을 저질렀지만 이들의 문제는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흙살림 최관호 이사는 우리나라 비료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당국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입찰가격을 가장 적게 제시한 회사가 낙찰되는 방식은 원자재 값이 비싼 비료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입찰가격이 비싼 회사를 기주으로 하면 원자재 값이 싼 회사는 폭리를 취할 수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농협이 100% 장악하고 있는 비료 산업은 특수성을 인정해야하고, 담합으로만 몰아 부칠 게 아니라 정부 당국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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