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기본법 제정’ 그 의미와 과제

‘협동하는 지역사회’ 대장정의 첫 발

  • 입력 2012.01.09 13:59
  • 기자명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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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이 작년 29일 국회 본회의의 의결을 통해 제정됐다. 2012년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3일 앞둔 시

▲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점이다.

점이다.

그동안 시장 위주의 양극화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과 따뜻한 경제생태계를 만들려는 사회적 합의가 높아지면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인들은 지난 53년간 지속됐던 협동조합 개별법 시대를 마감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시대를 힘차게 열어 갈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은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까다로운 개별법의 조건을 맞추느라 힘들었지만, 이제는 5명 이상이 모여 민주적으로 사업을 하려 한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3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모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신고하면 연합회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다양한 연합회 활동도 보장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에 해당될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의 독과점 조항도 적용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어 협동조합의 연대와 연합에 획기적인 기회가 열렸다고 하겠다.

그동안 개별법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노동자협동조합도 만들 수 있어,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다 나은 근로조건을 만들 수 있고, 영세자영업자들도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2차산업, 3차산업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법이지만 사회적협동조합 개념이 도입된 것도 상당한 진전이다. 일반협동조합은 법인격만 부여되지만, 낙후지역의 발전이나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은 특별히 사회적협동조합이란 ‘비영리법인’으로 별도 육성하기로 법안이 확정되어 농어촌을 중심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농협법과의 관계 문제일 것이다. 기본법 제13조 제1항에는 “다른 법률에 따라 설립되었거나 설립되는 협동조합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더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지만 기존의 농·수협 조직과 구성을 달리하는 협동조합, 예를 들어 비농업인이 함께 참여하는 직거래협동조합이나 농어촌지역의 사회복지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협동조합 등을 설립하는 것은 가능하다. 특히 농어촌공동체회사, 마을기업, 농촌관광마을 등 그동안 주식회사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고, 영농조합법인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했던 다양한 농어촌의 협동활동이 모두 협동조합의 법인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제한은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을 근거로 등록하거나 인가받는 협동조합들은 ‘농업협동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또 기본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협동조합은 금융사업이나 공제(보험)사업은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몇가지 제한에도 불구하고 훨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자조, 자율, 자립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협동조합운동은 원래 법제도의 정비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조합원의 열정과 협동조합선구자들의 올바른 지도가 결합해서 모범사례를 만들어 내고, 그 사례를 확산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의 역량이다.

농업계는 이미 제도가 앞서서 현장의 힘을 더 빼버린 사례를 가지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영농조합법인이란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영농조합법인의 정관을 보면 협동조합정관이다. 하지만 당시 영농조합법인은 농협을 대체할 협동조합운동의 제도라기 보다 보조금의 통로로 치부되어 형식적인 장점마저 무색하게 되어버리고, 전혀 협동조합적 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놀이판이 되어버렸다.

농협개혁의 지렛대로 협동조합기본법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사업수익과 전국적 시스템의 효율성과 힘을 가지고 있는 농협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면밀한 사업계획과 열정적인 조합원들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큰 성과이지만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대장정의 목표에 비하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입법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 협동조합인들은 더 많은 고민과 토론과 교육과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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