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소위 ‘농어업회의소’를 법제화하는 방안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를 보면 농어업회의소에 담긴 알맹이는 점점 사라지고 농업회의소라는 이름을 가진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높아진다.
농민들은 민관협치(거버넌스. governance) 농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농어업회의소를 이해하고 있지만 최근까지 농어업회의소추진과정을 보면 그동안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명멸해 갔던 수많은 농정 자문기구와 비슷한 길을 답습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무엇보다도 농정 거버넌스의 전제조건이자 기본토대가 되는 농정의 전반적인 기조에 대해 정부와 농민의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를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주요한 의제들이 쏙 빠진 채 형식을 갖추는 논의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농어업회의소라는 틀을 먼저 만들고, 그 속에서 농정의 기조와 주요 의제들을 점차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순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사라졌던 수많은 들러리 기구들이 범했던 것과 똑같은 오류가 이번 농어업회의소추진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년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왔던 농정기조의 변화가 없다면 농업회의소에서 다룰 의제도 과거의 들러리 기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 성과 역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농어업회의소가 만들어 진다면 몇몇 사람을 위한 자리는 마련될지 모르겠지만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우리의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상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를 만들지 않더라도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라는 농정기조의 방향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이 농업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농어업회의소라는 형식을 갖추는데 힘을 낭비하기 보다는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전반적인 농정기조를 확 바꾸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 농민의 대의라고 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은 농어업회의소라는 틀을 갖추는데 골몰할 때가 아니다. 농어업회의소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농정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농어업회의소가 주요하게 다룰 의제를 선정할 수 있고, 농어업회의소의 내용이 충실하게 만들어진다. 지금은 농어업회의소의 알맹이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