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촌것들의 여성농민 사랑 “여성농민지킴이단”

  • 입력 2011.10.10 09:32
  • 기자명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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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지킴이단은 서울여성회와 ‘언니네텃밭’ 꾸러미 소비자들이 만든 작은 모임이다. 
서울여성회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하는 ‘언니네 텃밭’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3년 전 당시 (구)‘우리텃밭’ 처음 시작하던 때였다. ‘얼굴을 아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의 만남’이란 모토 자체가 감동이었다. 또 언니네 텃밭으로 처음으로 여성농민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같은 여성으로서도 너무나 가슴 울컥했다.

그러면서 서울여성회 사무실에도 언니네텃밭의 꾸러미가 오기 시작했다. 그 첫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박스 안에서 나오는 두부며 달걀, 제철에 나 여성농민들이 하나하나 정성껏 다듬어 보낸 나물들….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겠다고 벌써 입맛을 다시고, 달걀은 작지만 자연의 건강한 빛이 돌아 너무 이뻐 먹기 아까웠고, 도시 촌것들은 잘 모르는 나물 이름 알아맞히기에도 바쁜데 더구나 어떻게 해먹을지 한참을 시끌시끌 수다를 떨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울린건 꾸러미 안에 들어있는 한 장의 편지였다. 날씨 걱정에 제 나라 제 땅에 나는 나물들도 잘 모르는 우리를 위해 어찌어찌 해먹으라는 당부까지,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그렇게 서울여성회는 언니네 텃밭과 인연을 시작했다. ‘얼굴을 아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의 만남’이란 모토를 넘어 여성농민운동의 새로운 시도, 식량주권을 지키려고 하는 여성농민들의 진정성이 담긴 철학과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배워온 지난 3년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산자’ 여성농민들은 ‘언니네 꾸러미’를 통해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고 그를 통해 식량주권과 여성농민운동의 필요를 경험하며 조직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저 마음을 알아주는, 꾸러미를 소비하는 개인들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천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서울, 지역이라는 개념이 사라져가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소비’를 매개로 공동체를 꾸리고, 그것을 통해 ‘언니네 텃밭’이 갖고 있는 식량주권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할 것인지가 고민되고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언니네 텃밭’ 소비자 회원 중에서 그 가치와 철학에 동의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과 만나게 되었다. 꾸러미에 담긴 여성농민들의 삶에 함께 공감하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한다. 이들과 자연스럽게 ‘여성농민 지킴이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아직 ‘여성농민 지킴이단’은 구체적 방향이나 계획이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그 단초를 지난 8월 25일 전국여성농민대회에서 보았다. 이제 막 두어번 만난 지킴이단 사람들은 그 날 노래를 배우고 여성농민들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노란 깃발에 적어 전시하고 짧은 인사말을 준비해서 전국에서 모인 여성농민들 앞에 섰다. 절박한 마음으로 한여름 아스팔트 농사를 짓겠다고 서울 시청광장까지 올라온 분들 앞에 서니 그저 그 자체만으로 가슴이 울컥해졌다. 여성농민으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을린 얼굴들은 뙤약볕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바탕 잔치같은 여성농민대회를 마치고 횡성에서 올라온 여성농민회 분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지킴이단이 준비한 노란 깃발들을 한보따리 챙기시기에 “저희가 치울깨요” 했더니, 치우는 게 아니라 횡성으로 가져가시겠단다. 지역에서 하는 행사 때 자랑스럽게 거시겠다고 하시는데 순간 눈물이 찔끔 할 정도로 고마웠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그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주시는구나 싶었다. 그러시더니 옥수수도 주시고 준비해온 떡도 주시고 그냥 가기 아쉬워서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으셔서 차를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신다. 버스 앞에서 헤어짐이 아쉬워 한참을 그렇게 서로 손잡아주고 인사도 하고 또 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날의 경험이 ‘여성농민 지킴이단’이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비전을 주었다.
그 날 이후로 여성농민 지킴이단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한미FTA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하기도 하고, 농민단체 대표분들이 여의도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 찾아가 응원해 드리기도 하며 도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둘 실천해가고 있다. 여성농민 지킴이단은 앞으로 연대의 힘, 여성의 힘,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힘을 배우며 실천하며 나아갈 것이다.

글 / 류 은 숙 서울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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