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대신 심은 수박, 수확 앞두고 날벼락

충북 음성군 수박밭 배수로서 물 넘쳐
피해농민 “논 중심의 배수관리, 잘못됐다”

  • 입력 2011.07.11 09:55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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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4만ha의 논에 타작물을 심게 한 정책을 졸속으로 시행해 농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 음성군 소이면에서는 최근 타작물재배 정책에 따라 논에 수박을 심었다가 수확을 코앞에 두고 침수돼 1,600만원의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농민 이형배 씨(71세)는 원래 논이었던 이곳에 작년부터 하우스를 짓고 수박을 심었다. 그는 근처 배수로가 있어 비가 올 때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며 수박농사를 지어왔다. 작년엔 별 문제 없이 수확을 마쳤는데, 올해는 예상치 못한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씨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강수량이 심상치 않아 수박밭에 물이 찰 우려가 있어 배수로 문을 닫고 귀가했는데, 이튿날 밭이 온통 물천지가 되고 말았다. 곧 수확을 앞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농사가 잘 돼 상인과 1,600만원 계약도 해 둔 상태였던 이 씨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파악한 결과 닫아 둔 배수로문이 열려 있어 물이 유입됐다는 것.

▲ 충북 음성에서 논에 수박을 심은 이형배 씨가 침수피해로 못 쓰게 된 수박을 걷어내고 있다.

하루아침에 물바다가 된 수박밭에 대해 이 씨는 수로관리를 담당하는 농어촌공사 음성지사에 하소연했지만 “수로관리 규정대로 비가 와서 배수문을 열었기에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음성지사 전만우 지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현재로선 피해농민에 대한 보상 방법이 없다. 타작물을 심을 경우 주위보다 논을 높게 만드는 등 농민들 스스로 침수피해를 방지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 지사장은 또 “최소한 지역여건, 흙의 성질, 배수여건 등을 감안해 작목을 선정해야 하는데 소득만 따져 심다보니 현장에서 여러 애로사항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로관리가 논농사를 기준으로 돼 있기 때문에 밭농사를 짓는 현실을 감안해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음성군농민회 이상정 회장은 이번 피해에 대해 “농어촌공사가 논농사만 해왔던 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배수관리 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논이 아닌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장을 감안한다면 배수관리도 현장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또 “올해부터 본격적인 타작물재배 정책이 시행돼 논에 하우스를 짓는 등 다용도로 변화하고 있다. 농사도 다양해져 수박이나 인삼 등을 논에 심고 있는데 이들은 특히 침수피해가 발생하면 모두 망치게 된다. 이상기후에 따라 강수량도 늘고 또 국지성 호우 등이 오면 언제고 침수피해 예비지역이기 때문에 수로관리 규정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책을 시행하려면 현장에서 발생할 여러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도입해야 하는데, 쌀 생산을 줄이겠다는 계산으로 타작물 전환만 졸속으로 밀어붙인 결과 준비 안 된 현장에서 농민들이 피해를 떠안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논에 벼를 심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땅을 정부가 망쳐놓은 것”이라며 타작물재배 정책을 강하게 비난 했다.

한편 수박농사를 망친 이형배 씨는 계약한 1,600만원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 처지에 놓여 주변 농민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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