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정부, 농기계 가격 결정권 업체에게 넘겨

‘기준가격 정부 승인제’ 폐지 … 정부는 융자한도만 설정

  • 입력 2011.05.02 12:5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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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농민 부담 가중 … 업체 살리는 농기계정책 비난

값비싼 농기계 가격은 누가 결정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작년까지만 해도 농기계 가격을 결정하는 몇 단계 절차를 설명했겠지만, 올해부터는 ‘농기계 생산업체’가 정답이다. 2011년부터 정부의 기준가격 승인제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기준가격 승인제 폐지 이전에는 농기계 업체가 제시한 희망가격에 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하 농기계조합)이 기준가격을 정하고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를 승인하는 체계였다. 다시말해 정부가 농기계가격을 조율하는  최소한의 노력과 절차를 밟았으나 올해부터 농기계 가격은 업체 자율에 맡겨졌다. 농식품부는 기종별, 규격별 융자한도액을 설정할 뿐이다.

이와 관련해 농기계조합 관계자는 “사실상 ’98년경부터 자율화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작년까지 정부에서 간접적으로는 가격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엄격한 절차나 기준 등이 있지는 않았지만, 업체가 제시한 가격을 농식품부 담당자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형식적 확인절차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업체가 원가계산서를 제시하고 거래가격이 형성된 제품은 그 가격에 준해서 소비자가격이 결정된다. 또 이들 업체에서 제시한 가격은 조합에서 1월과 7월에 발행하는 가격집에 등재된다.

기준가격 승인제가 왜 없어졌는지에 대해 농기계조합 관계자는 “현장에서 농기계 가격의 민원이 발생하면 승인가격에 대한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졌을 뿐 아니라 할인판매가 일반화된 농기계 거래에서 지자체 등 단체들이 농기계를 구입할 때 ‘정부승인가’는 원가계산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마저 차단하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고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정부가 우산을 씌워주냐는 불만이 많았다는 것. 결국 정부는 가격문제에서 빠지기로 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업체간 자율경쟁을 통해 시장가격을 형성하는 게 더 적합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말대로라면 농기계 유통에 있어 업체의 바람막이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현장에서는 농기계 업체를 견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농기계 가격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농기계 업체들은 즉각 반응했다.
농기계 업체들이 원자재 가격이나 인건비, 유가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해야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농기계조합은 업체들의 가격인상 통보에 뒤늦게 ‘농기계가격심의회’를 구성하며 적정성 여부를 따지고 있으나 가격자율화라는 정책을 들어 업체의 반발에 부딪히게 됐다.

농기계조합도 생산업체들이 결성돼 조직한 단체로,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조합의 속성상 농기계 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엄격하게 제어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폐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기준가격 승인제가 폐지됨에 따라 부담이 늘어난 것은 농기계를 구입해야 하는 농민들과 이를 판매해야 하는 대리점이다.

경기도 화성의 진 모씨는 “대리점에 농기계를 사러 가면 농기계조합에서 나온 가격집을 펼쳐들고 시세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업체가 마음껏 올린 가격을 소비자가격이라고 제시하면 이는 고스란히 농민 부담”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진 씨는 또 “기준가격 승인제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다시 도입해야 하고, 정부가 더 강력하게 개입해야 농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리점들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농기계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는 “기준가격 승인제 폐지는 몇해 전부터 나온 얘기”라면서 “대리점들은 가격승인제 폐지를 줄곧 반대해 왔다”고 전했다.
김 씨에 따르면 농기계 업체들이 물가인상률 등을 들어 값을 올리면 그게 고스란히 농기계 가격 책자에 고시돼 유통 기준가격으로 통용된다는 것.

그는 “농민들은 가격이 올라간 만큼 더 깎자는 심리가 발동해 파는 데도 애를 먹고 팔아도 결과적으로 대리점은 소득이 줄게 된다”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농민들 소득에 비해 농기계 값은 터무니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정부가 대농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모든 농산업도 대농 중심일 뿐 실상 가장 어려운 소농들이 농기계를 구입하거나 경영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또 농기계 업체의 수익성이 3~4년간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업체들의 주장에 대해 “판매가 감소된 측면이 있지만 ’09, ’10년 판매율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면서 수익성 부진을 일축했다.
다만 그는 “구제역 여파로 큰 목장들이 문을 닫고 있어 대형 축산기자재의 판매는 앞으로 상당기간 줄고 각 지역의 농기계 임대사업의 여파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업체들이 경영개선을 통해 경비를 줄여야지 이 모든 부담을 농기계 값에 포함시키면 안된다”고 말했다. 〈원재정 기자〉

농기계 구입지원사업이란?
’13년까지 벼농사 95% 밭농사 55% 기계화 유도 목표

정부의 농기계 구입지원 사업은 농기계 구입자금을 일부 융자 지원해 농민들의 구입부담을 줄이고 농업생산성 향상을 유도하는 한편 2013년까지 벼농사 기계화율 95%, 밭농사 기계화율 55%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총 사업량은 1조 143억원으로 이 중 융자는 7천1백억원, 자부담은 3천43억원이다. 5만 7백대를 지원한다는 목표지만, 사업량과 지원액은 농기계구입지원 자금형편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융자는 연리 3%, 1년 거치 4~7년 상환의 조건이다.
사업주관기관은 농협중앙회 및 시중은행 본점이고 사업담당 부서는 농식품부 식량원예정책관 농산경영과이며 지역농협과 시중은행 지점에 신청한다. 〈원재정 기자〉

#2011 농업기계 구입지원 사업 주요 변경사항                        자료 : 농기계공업협동조합

 

구분

변경 전(’10)

변경 후(’11)

비고

◦기준가격

◦농기계조합이 기준가격을 정하고 농식품부가 승인

농식품부가 기종별․규격별 융자한도액 설정

기준가격 승인제 폐지

◦융자지원율

◦기준가격의 70~90%

-융자상한액 : 트랙터 90마력, 이앙기 6조, 콤바인 5조 융자액을 상한으로 적용

◦기종별․규격별 융자한도액내에서 거래가격의 80%이내

-융자상한액 : 트랙터 100마력, 이앙기 6조, 콤바인 5조를 상한으로 하되, 기타 기종은 트랙터 100마력 융자한도를 넘길 수 없음

◦농업종합자금 융자율로 조정

◦사후관리

◦대출실행 후 2년간

◦융자금 상환일까지

◦사후관리 강화

 

 

#2011 농업기계 생산 및 사후관리지원 사업 주요 변경사항

 

구분

변경 전(’10)

변경 후(’11)

비고

◦지원금액

◦농기계생산지원 자금 : 600억원

-농기계생산 원자재 구입비축지원 : 480억원

-생산시설‧설비지원 : 120억원

◦농기계생산지원 자금 : 1,000억원

-농기계생산 원자재 구입비축지원 : 850억원

-생산시설‧설비지원 : 150억원

◦ 수출촉진을 위해 수출품목에 대한 개발비 등 지원

 

농기계구입지원사업, 각 기관은 어떤 역할 하나?

농기계구입지원사업의 주체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지원대상에 포함돼 있는 농기계의 지원여부를 결정하고 농기계조합이 대상 기종과 형식(모델)을 정비하게 한다.
또 신규지원대상 농기계는 농기계조합이 검토·심사하여 제출토록 하고 해당 기종의 정부지원 필요성 등을 검토해 지원여부를 결정하게 한다.
이와 함께 농기계별 융자한도액을 관리하고 농기계 공급자를 관리해 농민들의 피해를 유발했을 경우 공급자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이 밖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농기계조합 등의 역할을 살펴본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단순한 변경은 검정 거부
농업기계 검정 결과, 형식명·업체명 등의 변경 승인 내역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매월 농림수산식품부에 보고해야 한다. 단 검정을 받은 제품을 단순히 업체명을 변경하거나 일부 부품을 교환해 검정을 신청한 경우, 검정을 거부할 수 있다.

농기계공업협동조합

▶신규 정부지원 대상 기종 선정·심의
신규로 정부지원 대상을 받고자 하는 업체의 신청을 받아 정부지원 대상 농기계 선정·심의를 거쳐 농식품부에 승인 요청을 한다. 또 이미 포함된 지원대상 기계는 지원의 필요성과 검정·시험 등의 지원 요건을 검토해 농식품부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이와함께 농기계조합은 정부지원의 필요성, 지원실적, 품질·사후 관리 실태 등을 조사해 농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기계 형식 관리
정부지원 농기계 범위 내에서 형식 등록을 신청받아  적합성 여부를 심사해 형식을 등록한다. 등록을 요청한 형식이 기존 공급 형식과 구조·성능·안전성 등이 유사하거나 동일하다고 판단될 경우 형식명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동일 형식인지 판단이 어려울 경우,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동일 형식 여부의 검토를 의뢰할 수 있다.
농기계조합은 융자실적 등을 검토해 등록된 농기계 형식(모델)을 정비하고 년 1회 농식품부에 정비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농기계 형식(모델)을 등록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 등의 세부사항은 농기계조합이 정한다.
▶융자한도액 관리·생산원가 조사
농기계 규격별 융자한도액 설정을 위한 가격관련 자료를 농식품부에 제출해야 하며, 융자한도액 설정을 위한 가격자료 작성을 목적으로 정부지원 대상 농기계 공급자의 생산원가, 거래가격 등을 조사할 수 있다.
▶불량업체 퇴출 가능
품질이 불량한 농기계를 공급하거나 사후관리가 미흡, 시장질서 교란 등의 물의를 일으킨 공급자는 농기계 공급자에서 제외 하는 등 공급자들을 관리한다. 또 농기계가 건전하게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도록 교육, 지도, 홍보를 한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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