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로 다시 쓰는 농사일기

친환경 재배 5년차… 체험농장·직거래로 소득 높여
화성 2024블루베리농장 전유원 대표

  • 입력 2011.04.25 00:53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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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전유원 씨가 농사를 짓게 된 배경은 남달랐다. 학과 공부보다는 학생운동에 더 열심이었던 전 씨는 탈춤반을 하며 문화활동에 관심이 있었고 졸업 전에야 군대를 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91년도 10월 1일. 국군의 날이었다.

“군인들에게는 휴일이었던 그날 TV를 보다가 ‘땅이 죽어간다’는 기획프로를 보면서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에서 내가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농사를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전 씨는 당시를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회상했다. 문화에 관심을 갖던 그가 농사와 농촌으로 관심을 바꾼 계기가 된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설득했고 주변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보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농촌에 내려갔던 선배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하면서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퇴로 차단’을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학교를 졸업할 것과 결혼을 준비 할 것. 평생의 배필을 만나 드디어 1996년 경기도 화성으로 내려가게 됐다.

▲ 전유원 대표

“그 때는 지역에 농민회가 없어서 지금보다 바쁘지 않았다. 논농사만 짓다가 1년에 50일만빼서 농민회 일을 할 수 없냐는 권유 아닌 권유에 그거야 못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후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재정기획부장을 맡기도 하고 경기도연맹에서 조국통일국장을 맡기도 했다.

경기도연맹 활동이 한참이던 2007년에 직접 경작한 쌀을 ‘통일쌀’의 이름으로 북한에 보내기도 해 언론에 소개되기도 할 만큼 농민운동에도 앞장섰다. 줄곧 벼농사만 짓던 그에게 ‘91년 국군의 날’처럼 또 한 차례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2006년 1월 화성시에서 블루베리 교육을 한다기에 별 뜻 없이 참석했다가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 문제는 만만치 않은 투자비였다. 농사짓는 농민들이 으레 갖고 있는 빚도 버거운데 묘목을 준비하고 밭을 만드는 일에 또 빚을 늘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마침 시에서 특화작목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 나오면서 보조사업으로 확정됐고 새로운 도전에 첫발을 내디뎠다.

현재 전 씨는 4천5백평 블루베리 농장을 튼실하게 키워나가고 있다. 이름하여 2024 블루베리 농장. 번지수 이름을 딴 농장명은 기억하기도 쉽지만 네비게이션으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일거양득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6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을 한다는 블루베리는 꽃눈이 곧 벙글어질 듯 통통했다. 김을 매고 두둑을 손보고…. 올해 농사가 막 시작된 이 시점은 친환경으로 농약 한 번, 화학비료 한 번 안치고 키우느라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그는 “전국적으로 블루베리 농사가 늘면서 작년에 값이 하락할 거라고 다들 예상했는데, 대기업에서 블루베리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면서 농민들이 득을 봤다”며 “농사지으면서 대기업 덕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껄껄 웃는다.

건강 과일로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블루베리는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귀족과일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을 만큼 현대인들에게 면역력을 높여주고 눈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쫙 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타임지에서 세계 10대 장수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블루베리의 효능을 국내 대기업에서 앞 다투어 선전하고 나선 덕에 전 씨는 지난 해 톡톡한 소득을 올렸다는 것.

그는 “작년 kg당 도매가격이 이전 해에 비해 배는 올랐다”고 말하면서도 유통업체를 통하기보다 직거래 방식이 더 맞다고 말했다.

화성블루베리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해 작년에 인근 농가들의 블루베리를 집하하고 포장하고 해 봤지만, 인건비도 빠듯한 실정이다.

그래서 올해 직거래와 인터넷 판매에 더 공을 들일 계획이다. 작년 ‘2024블루베리 농장’에 다녀간 체험인원이 1천명이나 된다. 블로그에 체험 사진을 올리고 각각의 사연을 정성스레 올리면 그들의 입소문으로 새로운 소비자가 생기다 보니 입이 쩍벌어질 소비자손님들이 모여든 것이다.

“올해는 페이스북을 통한 판매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전 씨는 “빚만 조금 더 정리되면 지금보다 소득이 줄어도 된다”는 말로 포부와 희망을 한꺼번에 표현했다.

공부 안 하는 아들한테 물려줄 마음으로 심었다던 블루베리가 빚을 줄이고 새로운 목표로 자라면서 제2의 농사일기를 쓰고 있는 전 씨는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경제적인 문제는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있다. 장기적으로 가려면 경제문제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화성시농민회 초대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지금은 일반 회원이다. “농민운동을 농민회 활동으로만 국한 지을 수는 없다. 빈약한 농촌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일, 그런 분야에 지금은 더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며칠 후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부지런한 농사꾼인 그는 곧 해가 질 저녁시간에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다시 나무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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