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은 없고 자본만 남은 농협법 개정

개정 농협법 무엇이 문제인가? - 1. 농민 배제된 개정 농협법 탄생

  • 입력 2011.03.28 13:4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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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최종 처리됐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농협중앙회는 신용지주회사, 경제지주회사 체제인 1중앙회 2지주회사의 새로운 조직으로 출범한다.

그러나 17년의 긴 공방으로 농업계의 숙원이었던 농협법 개정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개악’ 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을 위해 조직된 ‘협동조합 정신’은 사라지고 경쟁과 자본만 남았다는 개탄의 목소리는 왜 나오고 있는지, 개정 농협법의 문제에 대해 5회에 걸쳐 분석한다.

 

 

■ 개정 농협법, 농민은 없다
농협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전체회의를 거쳐 확정됐다.
2009년 국회에 상정돼 햇수로 2년의 진통 끝에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분리(신·경분리)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랜 숙원이던 신경분리 문제가 일단락 된 점을 환영하고 지금부터라도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힘쓰자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으나, 이번 개정 농협법에 농민은 없었다.

농민들이 지금까지 외쳐온 ‘신경분리’로 겉껍질을 포장했지만 알맹이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지주회사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또 농협중앙회 무소불위의 권력을 축소하고 농협 본연의 역할인 경제사업을 활성화 하자는 농협개혁의 근본적 화두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거느리게 됐고, 수익이 최대목표가 될 경제지주회사방식은 자칫 지역농협의 경제사업과 또다른 경쟁체제를 갖출 우려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 정권과 함께 생성 소멸 반복한 농협개혁
1994년 농업농촌발전대책에서부터 농협개혁이 핵심과제로 대두됐고,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당시 농업계는 농협중앙회가 비조합원 대상사업인 신용사업 수익제고에만 치중하고 조합원이 요구하는 경제사업과 농산물 유통에 소홀해졌다는 비판을 하며 신경분리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거대 공룡으로 성장한 농협중앙회는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업분리 요구를 막아냈고, 신경분리를 하면 농민들한테 득이 될 것 없다는 논리를 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개혁은 농업문제 해결의 첫 번째 과제로 등장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일이 반복됐다.

이로인해 농민들이 외치는 협동조합 개혁 문제는 메아리로 떠돌 뿐이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가락동 발언 이후 MB정권은 농협개혁 문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농식품부가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구체적인 농협개혁작업에 깊숙이 관여하자 농협중앙회도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 금융위기 상황이 도래해 농협중앙회 신용사업도 위기에 직면하고 조속한 신경분리 추진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당시 농협개혁위원회에 참가했던 기원주 전 전농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농협중앙회의 개혁안에 대해 “개혁대상이 개혁안을 내는 모순된 일이 벌어졌다”며 “농협중앙회는 이사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몇몇 직원들이 중심이 돼 구조개혁단을 만들고 이른바 맥킨지 안이라는 자체 개혁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농협개혁위원회는 2009년 3월 농협중앙회를 전국농협경제연합회와 상호금융연합회라는 큰 틀로 분리하고 연합회 체제 아래 출자와 투자 관계로 농협경제지주, 금융지주를 세워 합리적인 경영의 틀을 마련하다는 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해 12월 농협개혁위원회 안과는 다른 지주회사 방식의 농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농민단체 단일안 철저히 외면
3월 3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법안심사소위, 4일 상임위 통과 후 11일 국회 전체회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개정 농협법이 탄생했다.
지난 해 11월 농민단체들은 단일안을 마련하며 막판 힘을 모았다. 단일안이 마련되면 당론으로 채택한다던 민주당은 누구하나 거들떠보는 이 없었고, 국회는 정부와 농협중앙회 합의만 독려했다.

결국 농민단체 단일안은 법안심사소위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휴지조각이 됐고,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를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말았다.
국회 농식품위 최인기 위원장 측은 “농민단체 단일안이 너무 늦게 완성됐다”며 시기를 문제 삼았다.

상임위를 통과하던 날 오전에 최인기 위원장은 지역구인 전남 나주에 있었다.
이날 지역농협 조합장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농산물 유통문제에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농협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소신을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오전엔 ‘통과불과’ 입장을 밝히고 오후엔 의사봉을 휘둘러 농협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로 농협법 국회 통과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 농민단체의 관계자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농협법을 절대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책임있는 사람들의 말도 하루아침에 뒤바꿀 만큼 정치권의 모종의 협상이 있었을 것”이라며 “농협중앙회를 슬림화하겠다는 당초 취지도 무색할뿐 아니라 경제사업활성화를 위해 자본금 30%를 우선 배분한다는 다소 진전된 모습 외에 지역농협의 경제사업을 획기적으로 견인할 그 어떤 것도 담지 않았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그는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의 조직인 협동조합이 이익이 최대 목표인 지주회사로 체질을 바꾸는 것은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농협 금융사업 날개달다
농협은 내년 3월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에 이어 200조원대 자산을 보유한 금융지주회사로 도약하게 된다.
김태영 농협중앙회 신용대표는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직후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하면 프랑스 1위 금융그룹인 크레디아그리콜(CA)처럼 국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금융업계 내에서 조차 “금융지주회사가 설립되면 농협의 금융사업은 날개를 달겠지만 농민을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무색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에 대해 농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와중에 농식품부는 개정 농협법에 대해 공무원들만을 대상으로 소극적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고, 농민들은 ‘농협법 재개정’을 촉구하며 설명회를 무산시키고 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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