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으러 동굴로 들어갔다

인터뷰- 전북 군산 대야농협 민윤기 조합장

  • 입력 2011.02.28 09:0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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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농식품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2010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를 통해 12개 쌀브랜드를 뽑았다. 그 중 5개가 전북 브랜드이고, 군산 대야농협의 ‘큰들의 꿈’은 3년 연속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대야농협 민윤기 조합장〈사진〉은 전국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관내 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지만, 초선 조합장으로 쌀값 때문에 고충도 많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농민회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던 민 조합장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다는 심정으로 농협 경영 현장에 뛰어들었다. 대야농협 이사를 거쳐, 조합장이 된 지금까지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말하면서도 “주인이 주인노릇을 잘 하기 위해 노력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재정 기자〉


# 조합장 출마 계기가 궁금합니다.
농민회 활동을 하다가 농협을 바꿔보겠다고 이사가 됐는데, 예·결산서를 받아들고 눈앞이 캄캄했다(웃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뭘 알아야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바꾸고 할텐데, 나를 이사로 뽑아준 사람들 얼굴이 어른거리면서 부끄러웠다.

▲ 민 윤 기 전북 군산 대야농협 조합장
예·결산서를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들여다봤다. 생소하고 낯선 자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한번 보고 또 보면서 순서 익히고 단어 외우고,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하는 이·감사 교육에 2~3년 참가하다보니 눈을 뜨게 됐다. 지역농협 이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주장했는데 실현된 것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농협의 변화가 미미했다.

전농 협동조합 교육에서 강사로 나선 괴산 불정농협  남무현 조합장이 “밖에서 노력하는 것보다 조합장 되는 게 큰 개혁 이룰 수 있다”고 한 말에 공감해 출마했다. 선거전에는 전·현직 조합장 등 4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였는데 49% 득표로 당선됐다. 조합원들도 변화를 원한다는 마음을 표로 말했다고 생각한다.

# 취임 시기와 쌀대란 시기가 맞물려 쉽지 않았을 텐데.
2009년 4월 취임 이후 쌀값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주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 지역 상황에서 매우 긴급한 문제였다.
그 해 나락값 결정을 할 때 우리 농협에서 먼저 가격을 높게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인근 지역 쌀값을 견인하는 역할도 할 거고. 그러나 2008년, 2009년 연속 풍작으로 쌀값이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벼를 비싸게 매입하다 보니 RPC 적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2009년 4억, 작년 17억대의 적자가 났다. 자본금 50억원의 농협이 만년 부실조합으로 전락하는 위기상황을 맞았다. 직원 임금을 줄이는 등 어렵게 수지를 맞추면서 급한 불을 껐다. 쌀값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농민 입장만 생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나 때문에 조합원들한테 쌀값 관련해서 질타를 받은 인근 농협 조합장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다.
우리 농협 쌀 ‘큰들의 꿈’이 3년 연속 우수브랜드로 선정돼 자부심도 크지만, 취임 2년의 시간은 쌀문제로 힘들기도 한 시절이었다.
또 여전히 진행 중인 노조와의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조합원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다. 지난 50년 세월동안 주객이 전도돼 농협 직원이 주인이 됐다. 주인이 주인 노릇 잘 하려면 교육을 통해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합원의 수준만큼 조합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의원, 조합원 교육에 힘을 쏟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참여율이 저조했다. 대부분 연로한 조합원들이 “지금까지도 잘 살았는데 새삼스레 무슨 교육이냐”, “어려워서 머리 아프다”는 등의 반응부터 별 관심이 없어 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조합에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조합 실정을 제대로 알고 협력할 부분은 적극 협력해야 상호작용 속에 농협이 거듭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쌀문제도 값이 낮을 때는 벼가 넘치도록 농협에 맡기고 값이 좋을 때는 모자라는 현상이 있다. 올해도 벼가 부족했다. 농협을 믿고 쌀을 내주면 우리도 최선을 다 할텐데…시간이 더 필요하다.

#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농민회 활동한 조합장이 됐으니 뭔가 획기적인 개혁바람이 불 것으로 생각했던 조합원들 중에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도 한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방만한 경영을 확 틀어쥐고 고쳐나가는 중이다.
또 농민회 출신 조합장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농협직원 출신 보다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농협을 원칙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철학은 갖추었을 테니까. 조합원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시스템 구축이 목표다. 임기 중에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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