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 입력 2011.01.24 13:43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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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며칠 전에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 그것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랬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라 책을 읽거나 영화, 아니면 다큐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왈칵 울음이 터지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울보아빠’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를 울게 한 것은 어느 예능프로였다. 소설을 쓰겠다고 두 달 가까이 집을 떠나 지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중의 하나가 텔레비전이다. 뉴스 정도나 챙겨보아야지, 하다가도 채널을 돌리다보면 재미에 빠져 몇 시간씩 멍청하게 눈을 주기도 한다. 그 날도 저녁을 먹고 올라오니 전에 아이들하고 자주 보던 예능프로가 나오기에 무심코 보기 시작한 거였다.

진행을 하는 방송인들과 아시아 각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그 프로는 시작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매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못된 습성이 있는지라, 40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노동자의 부당한 처우나 열악한 환경에 관심을 두는 대신 얄팍한 예능프로에 고작 다섯 명을 출연시켜 그런 현실을 호도하려한다는 혐의가 우선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웃고 떠드는 꾸며진 각본에 들러리로 동원된 몇 사람일 테지 하는 고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역시나 그들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이 게임이나 먹는 것 따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고 각자의 고향에서 찍어온 화면을 보여줄 때였다. 그들도 놀란 듯 고국에 남겨둔 가족을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보기에도 가난이 묻어나는 집에 여러 식구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간 남편이나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애잔함과 끔찍함이 함께 불러낸 눈물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데 곧이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화면 속의 그 가족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 때부터는 거의 오열이 되었다. 프로가 끝날 때까지 적어도 한 컵 정도의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약간의 탈수가 왔는지 물을 두 컵이나 들이켰으니 말이다.

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두 달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내 외로움이 더욱 그들이 겪는 아픔에 공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떠나 있으면 며칠이 채 안되어 아이들이 보고 싶다. 달포쯤 되면 사무치게 그리워져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심지가 굳지 못해서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마음인 걸 어찌하랴.

새벽에 잠이 깨어 아이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무능한 아비를 만나 일찍 철이 든 큰딸과 아직 세상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어린 아들까지, 그 애들이 살아갈 불안한 앞날이 미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며 귀밑머리를 적시다보니 여러 눈물이 떠올랐다. 내게 최초의 정치적 각성을 준 광주항쟁 비디오를 골방에서 보며 우리는 얼마나 울었던가. 그 눈물은 최루탄과 곤봉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젊음을 불사르는 기폭제였다.

문익환 목사님의 ‘열사이름’ 연설에 백만 명이 함께 통곡하던 기억은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평양에서 흘리던 임수경의 눈물과 삼팔선을 넘던 문규현 신부님의 눈물, 그 이후에도 숱한 역사의 현장에는 눈물이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고도 남으리라. 생각하면 우리의 현대사는 죽음과 눈물의 골짜기였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얼마일 것인가.

눈물은 또한 정신을 헹구는 맑은 샘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하는 힘을 주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한다. 한 바탕 눈물바람 끝에 코를 휑 풀고 나서 들일을 나가던 옛 농민의 마음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울 줄 아는 눈물을 물려주어야겠다. 나는 울보아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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