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아야 하는 세상

  • 입력 2011.01.17 16:40
  • 기자명 오미란 전남여성플라자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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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히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가 미혼, 독신여성에 대해서 세금을 엄청나게 먹여야(물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치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지 않는 여성을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에서 정말 심각한 여성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죄인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가 죄인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죄인지? 결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가 죄인지? 헷갈릴 만큼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단지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결혼하고 애낳아서 열심히 키워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납하면 여성들에게 무엇을 주겠냐고? 고작해야 장한 어머니…. 적어도 한가지일에 2-30년을 종사하면 프로로 인정을 받는다. 어린이를 키우는 일, 집안 살림 20년 넘게 하면 프로로 인정해주느냐고….

그리고 묻고 싶다. 미혼여성, 무자녀 여성의 세금을 두 배로 올려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군가산점처럼 승진시 결혼·출산 가산점도 줘라. 그러면 승진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라도 애 낳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다. 농촌에 와서 살면 아이들 학비 평생 대주고 지원한다고 해라. 어차피 사람한테 투자하는 것이 가장 큰 이문이 남는 장사라고 했던가?

그래서 또 생각해본다. 정말 농촌에서 살고 애를 낳으면 학비 평생 대주면, 인구가 뿅뿅 증가할까? 결혼하기도 어렵지만 결혼을 해서 애를 가져도 산부인과가 없는 군단위가 늘어나 찾아갈 병원이 없다는 항변, 애를 낳아도 산후조리를 도와줄 친지도 가족도 없어서 외지의 산원이나 도시의 형제자매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출산도우미 관련 기사를 읽다가 심통이 나서 항변해 본 생각이다. 도시노동자의 산전산후 휴가는 유급으로 90일 내외이다. 반면 농촌의 경우 출산도우미 45-60일 내외로 본인부담은 15%이다. 그나마 외지로 나가서 애를 낳고 간병을 할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 애를 낳아도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으니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뭐 산부인과 타령이냐고? 산부인과 갈 사람도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다.

요즘 군단위에서는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는데 가장 효과적인 인구 늘리기는 결혼으로 인한 가족의 증가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확대재생산의 상징이니까. 그러나 농촌지역으로 결혼을 해서 얻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될까? 저출산을 얘기하려거든, 인구증가를 얘기하려거든 먼저 애 낳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농사를 짓는 것이 밥이 되고, 농민이라는 직업이 전문가로 인정받고, 농사경력이 사회경력으로 인정되는 그런 일은 없을까? 농촌지역 산모들에게 월 1회 방문 정기검진서비스를 실시하고, 농촌지역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할 경우 3개월 동안 무료 산원에서 산후회복 치료를 제공하고, 농촌지역 아이들은 평생 동안 학비를 무료로 지급한다…. 등등.

괜히 미혼여성, 독신여성 흠 잡지 말고 결혼한다는 사람 팍팍 밀어줘서 미혼여성 1인당 3명의 인구증가 효과를 가져 오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결혼하고 애 낳으면 뭘 해줄건데? 그리고 미혼남성, 심지어 기혼남성이면서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할 건데? 세금부과? 승진차별? 그 분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얄궂은 여자만 욕하지 마라.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당신과 세상이다. 우리 여성들은 애 낳고 싶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나 애 낳아야 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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