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귀신이 내린 마을”

  • 입력 2010.12.24 13:34
  • 기자명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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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귀신이 내린 마을”

구제역이 창궐한 마을에 적막이 감돈다. 집집마다 문을 걸어잠그고, 주민들은 말을 잃었다. 구제역은 가축 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평화와 공동체도 앗아갔다.

패물을 팔아 사들여 자식같이 키우던 가축들을 땅에 묻은 집에서는 한숨에 땅이 꺼지고,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이웃과 친구들도 감히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한다.

아직 구제역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을은 통째로 고립된다. 이웃과의 교류는 불가능하고, 인터넷조차 되지 않는 집에서는 구제역 발생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와, 발생지 주변이라서 예방적 살처분을 한 농가들 사이에서는 말조차 섞지 않는다. 구제역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 사람 때문에 우리 집이 망했다’는 생각에 원망만 커간다.

역학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웃간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안동의 경우 베트남에 다녀온 농가들이 구제역의 원인으로 몰리자, 먼저 가축 이상증세로 신고했던 이웃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서로 원인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이러다 보니 가족같던 마을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 구제역 농가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왕따가 됐다.

모두가 피해자인데도 보상금 지급 과정에서도 발생농가와 예방적살처분 농가 사이에 처우가 달라지자 마을 주민끼리의 갈등의 골만 깊어간다.

구제역을 겪은 농민들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특히 살처분 현장을 직접 보거나, 가축을 집과 농장 바로 근처에 매몰한 농가들은 충격이 더했다. 급기야 강화에서는 한우 40여두를 살처분한 농장의 여성농민이 자살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안동에서는 애지중지 키우던 가축을 하루아침에 잃은 농민이 실신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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