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투성이… 정부 위기관리능력 바닥 드러나

“의심신고 중앙으로 보고 안돼” 초동대응 미흡
구제역 농장 가축 유통되기도

  • 입력 2010.12.24 13:33
  • 기자명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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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초토화한 올 해 구제역으로 한해동안 1,700여 농가의 가축 28만두수가 살처분 매몰됐다. 16만두를 살처분했던 2002년의 피해도 컸지만 당시는 돼지농가에서 주로 발생해 살처분 범위가 넓었던 것으로, 올 해와 같이 3개도 16개 시군에 걸쳐 엄청난 숫자의 피해농가를 발생시긴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그런 만큼 사태를 이만큼까지 몰고온 구제역 대응 능력 미비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초 의심신고에도 불구하고 대응이 늦거나, 경험부족으로 인한 살처분 방역 어려움, 국경검역 구멍 등이 지목됐다.

▶ 구멍난 국경검역, 허술한 방역
1월에 발생한 구제역의 경우 동북아시아국가 출신 이주노동자와 중국을 방문한 농장주로 인해 전파됐을 가능성이 점쳐졌다. 상반기 구제역 피해 농민들은 공항에서의 출입국 검역이나 역학조사 등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발판소독 뿐인 국경검역은 허술할 수밖에 없고, 초기에 외국에서 들어왔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국내에서 전파된 것이기 때문.
지난 11월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의 경우에도, 축협조합장과 한우농가들이 구제역 발생국인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고도 국경검역을 거치지 않고 들어온 것이 알려졌다. 이후 안동지역에서 구제역이 일파만파 번지자 구멍난 검역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욱 커졌다.
또 안동의 구제역발생농장에서 양성판정을 받기 직전 출하한 가축이 서울 가락동 축산물공판장으로 이동돼 도축·유통된 사실이 알려져 정부의 방역 구멍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전국적으로 이동 범위가 넓어지고 해외여행도 많아진 지금, 모든 살처분과 차량과 사람의 이동을 막지 않는 한 소독에 의한 방역은 요원하다는 것이 올 해 구제역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구제역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됐다.

▶ 경험 부족, 검사 부정확
경험도 없는데다가 너무 많은 가축을 살처분하다보니 애지중지 키우던 가축을 ‘생매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가축이 발버둥을 쳐 구덩이에 깐 비닐이 찢어져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매몰지가 부족해 자신의 농장이나 집 앞 논밭에 가축을 파뭍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포지역의 살처분 과정에서는 500m 반경에 대한 측량의 실수로 인근한 농가들에 대해 추가 살처분이 진행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11~12월 사이에는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살처분 매몰 작업이 더 어려워졌다. 안동지역에서는 한꺼번에 엄청난 수의 가축을 살처분하기 위해 경험이 없는 공무원까지 대거 동원되면서 매몰작업은 더뎌지기만 했다. 속타는 발생지 주변 농가들은 살처분이 늦어져서 더욱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원성을 쏟아냈다.
한편, 11월 23일 안동의 한 돼지 농가에서 가축 이상 증상으로 지역 가축위생시험소에 신고를 했으나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 넘어갔던 일이 드러났다.
또, 안동최초신고의 경우 처음 간이키트에 의해 음성판정을 받았다가  3일이 지나 확진을 받는 등 구제역 검사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 살처분 속도 못따라가 ‘생매장’까지
사건 사고도 잇따랐다. 12월 2일 밤 구제역 방역초소에서 야간근무를 하다가 쓰러져 끝내 사망한 안동시 공무원 고 금찬수 씨의 사례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한파 속에서 야간작업을 해야 하는 방역·매몰작업에 가축이 아니라 사람 잡겠다는 웃지 못할 농까지 나왔다.
한펀, 안동시에서 돼지 수천마리를 한꺼번에 매몰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등에서 ‘인도적인 살처분’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한 수의사는 기고를 통해 ‘한국식 신속정확한 살처분’이 항상 효율적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매뉴얼은 매뉴얼일 뿐”
12월 들어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살처분 피해액이 커지자 정부는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어 발생지 인근에 대한 백신 처방을 결정했다.
백신은 2000년 구제역 당시에 사용된 적이 있으나 가축에 생길 부작용 우려는 물론, 청정국 지위를 잃게 되고, 6개월~1년간 수출이 금지되는 등 부작용이 커 사용을 꺼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카드’를 꺼내들 만큼 현재 심각한 단계에 와있는데도 당국은 위기관리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red)’으로 격상하지 않고 있다. 방역 활동과 관련해서 사실상 심각단계와 경계단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지금 체계에서 변화가 오면 오히려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까지 왔는데도 위기관리 최고단계로 격상시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위기관리 매뉴얼에 실효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지적이다.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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