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통합’ 속으론 ‘잇속’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자리에 농민단체 관련 후보 난립

  • 입력 2010.12.20 17: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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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후보 못 내 결국 농업 외 인사에 자리 내줘
농민단체 통합 기자회견 무색… 농업계 ‘부끄러운 현실’ 반성해야

최근 농협중앙회 사외이사에 농민단체 출신이 배제된 데에는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농민단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다.

지난달 30일 농협중앙회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사외이사 자리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농민단체 출신 후보자가 거론되다 중단되고 세종시 관련 말 바꾸기로 논란이 됐었던 퇴직 공직자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농업계 쪽에서는 농업과 무관한 사람이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자리를 맡게 된 것에 대해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대놓고 묻는 농업계 사람도 다수였다.

그런데 이같은 결론이 나기까지 농민단체는 차마 내 놓기 부끄러운 자리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이번에 선출한 사외이사 자리에 농민단체 출신으로 배정하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최원병 회장도 농업인의 날 행사 추진 실무회의 자리에서 단일 후보를 내달라고 주문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하면서 “농민연합 차원에서 전직 단체장으로 3명의 후보를 고민했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현직 농민단체장으로 구성된 5명 가량의 후보자 명단이 추가로 있었다”며 해당 단체들을 읊어줬다.

▲ 농업인의 날 행사가 열린 11월 11일 농촌진흥청 대강당 앞에서 농민단체 대통합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후보자 단일안 고민과 별개로 농민단체장들이 개별적으로 사외이사를 염두에 두고 농협중앙회에 발걸음을 했다는 것.

결국 사외이사 자리 1석을 두고 농민단체장들의 물밑 로비가 치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립한 농민단체 후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원회가 가동됐고, 국무총리 실장을 역임했던 권태신 씨가 최종 선출됐다.

이와 관련해 후보자 명단에 거론됐던 농민단체장들은 “나는 절대 욕심 없다”며 “농민단체의 통합이 빨리 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공통적으로 밝히는 한편 한 단체장은 “이번 사외이사 자리는 결원에 대한 보충이므로 농민단체 출신 문제를 꺼낼 사안이 아니다. 내년 임기 만료 되는 사외이사에 농민단체 출신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말하며 연관성을 희석시키기도 했다.

내 탓 보다 남 탓 하는 농민단체

A단체장은 “농민연합 회의를 할 때 전직 단체장이 가야 정도라는 것에 공감했다. 지역농협 이사를 수 년간 해 봤지만 구조적으로 제 몫을 다하기 어려운 자리 아닌가? 어떤 사람이 가도 망신이지만 농민단체 출신이 참여하는 데 의미를 두고 전직 단체장이 가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알기로는 5명 정도의 단체장들이 농협중앙회에 직접 찾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수의 단체장들이 농협중앙회와 접촉한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A단체장은 또 “내 이름도 거론됐다고 하는데, 현직을 그만두면 모를까 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관계자들이 언뜻 나한테, ‘회장님이 깜인데…’ 그런 말을 하기는 했다”며 혹시 모를 오해에 대비했다. 그는 “농협중앙회가 곤란하니까 결국 농민단체에게 떠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후보자로 거론된 B단체장은 이번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농민단체 출신 배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농민연합과 농단협(전국농민단체협의회)의 통합이 중요하다”며 통합론을 앞세웠다.

이어 그는 “농협중앙회 최원병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단일 후보를 내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 11월 11일 농민단체 통합과 관련된 기자회견 이후에도 결과물이 없다”며 현 상황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는 또 “이번 사외이사에 농민단체 출신이 배제된 것에 대해 농민단체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냐”며 “내년 중순에 한 번 더 오는 사외이사 선출까지는 단일안이 나오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농민단체장들이 농협중앙회에 찾아가기도 했다는데 알고 있냐는 질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무게감 있게 답하면서 “사외이사가 되면 2,3백만원의 보수도 나온다던데 농업·농촌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인물이 활동하는 게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이 없이 활동하는 것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매몰차게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했다.

C단체장도 명단에 올랐다. 입장을 묻자 “이번 사외이사는 결원이 생겨 충원시키는 것이므로 농민단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농민단체장 후보자가 있다 하더라도 각 계 각 층의 수 십명의 후보자 전체로 볼 때 극히 일부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내년도 사외이사 선출 때를 기약하면 된다. 농협중앙회장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모든 후보자와 통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단체장도 자기반성을 하는 모습은 없었다. 후보자로 거론 됐다는 사실은 물론 개인적인 접촉조차 전혀 없던 일인 양 모든 문제의 출발을 욕심을 부리는 다른 단체장들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을 전해들은 한 농업계 인사는 “농민을 위한다고 선출된 단체장들이 개인적 욕심을 앞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이번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농업계 전반의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어느 단체가 자유롭겠냐”며 허탈해 했다.

기상대란으로, 구제역으로, 넘치는 쌀로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낸 농민들에게 이번 농민단체장들의 자리 욕심은 어떻게 비춰질지 깊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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