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기의 농사이야기-⑨

시월의 삽화 한 토막

  • 입력 2007.10.29 10:07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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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품앗이 좀 하자.”

너무도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 조선나이 서른둘에 요절한 1930년대의 소설가 백신애, 그의 전집 만드는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밥은 먹었나 인사 한 마디 없이 대뜸 멱살부터 틀어쥔다. 품앗이라, 이 말이 아직도 살아 있었나? 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네, 싶어 몇 번이나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다가 나는 짐짓 능청을 떤다.

“푸마시? 그게 무슨 말인데?”

“지랄한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나락농사 지을 때 쓰던 살초제 이름이 ‘푸마시’ 아니었나?”

나는 한껏 능글능글해지고 싶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든 ‘품앗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개구멍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야, 다 망한 세상에 니가 무슨 농촌공동체를 복원 하겠다고 품앗이냐, 품앗이는.”

“그카지 마고 한 이틀만 짚 좀 실어 주라. 밀 씨 넣을라카이 논바닥이 질어 퍼뜩 짚 걷어내고 말려야 하는데 일꾼이 없다. 좀 봐도.”

밀? 그 소리에 얼핏 보이던 구멍이 꽉 막혀버리는 것 같다. 나는 또 대답을 미룬다. 불량기 많은 고등학생이 학교 개구멍 찾듯 부지런히 구멍을 찾아 이리저리 들락거려본다.

“니는 아직도 나락농사 짓는 그런 후진국에서 사나. 참 불쌍타.”

“어이 백수 형님, 높은 자리 있을 때 불쌍한 백성 좀 봐주소.”

친구는 내 멱살을 틀어쥔 손에다 힘을 더 가한다. 나는 캑캑거린다. 빠져나갈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봉쇄되는 것 같다. 사실 나의 백수생활은 한 달이 넘었다.

“그러면 니는 언제 갚을래?”

나는 아직도 미적거린다.

“복상 딸 때 갚아 주께.”

“지랄한다. 지금 원금 주고 내년 여름에 받으면 이자는?”

“아 쓰팔! 농민회 회장님이 그카믄 너무 추접잖아.”

농민회가 무슨 속죄양도 아닌데 나는 뜨끔 한다. 벗어던진 지 몇 년이나 지난 망할 놈의 회장은 아직도 졸졸 따라다니며 애를 먹인다. 그러나 말이 나온 김에 삐딱하게 한번 옆구리를 찔러보고 싶어진다. 어차피 못 먹을 감 아닌가. 그러나 ‘농민회 가입하면 보국대 할께’ 라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뱉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간신히 승낙을 하고 쩍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다.

‘아이고, 나는 조졌다.’

꼬박 한 달 넘게 노동현장을 떠나 있은 탓에 건달 손처럼 깨끗해진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그야말로 백수다. 베일라로 묶은 짚 뭉치를 트럭에 싣느라고 온몸이 지푸라기를 뒤집어쓸 일이 그만 아득해진다. 나는 원고뭉치를 내던지며 나뒹군다. 아이고, 나는 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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