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자민통이야

  • 입력 2010.05.31 08:38
  • 기자명 김원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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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말로 불바다 운운한다고 전쟁이 아니다. 군사분계선이나 NLL의 충돌만이 전쟁이 아니다. 이미 남북간에, 남남간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들 마음속에 미움과 갈등, 분노와 대립이 불같이 타오르니 이미 전쟁인 것이다. 반북대결의 냉전유령이 다시 한반도를 휩쓸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 김원일 (사)통일농수산 사무총장

오늘의 현실을 문자 좀 쓰면 참으로 난형난제(難兄難弟)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며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새 정부 들어 ‘혹시’ 했던 일들은 모두 ‘역시’가 되었으니, 인권과 민주주의는 후퇴를 넘어 질식사한 지 오래고 남북교류와 협력은 악(惡)이고 오직 반북대결만이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로써 통일농수산 창립 10돌은 의기소침해졌다. 어쩌면 기념행사도 취소하고 조용히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통일농수산은 지난 2000년 7월 4일, ‘6.15공동선언’에 호응하여 남북농업의 교류협력과 상생번영을 논의하는 ‘포럼’으로 출발하여 2004년에 금강산 지역의 ‘삼일포협동농장’에서 시범영농을 성사시키면서 ‘사업단’을 출범시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금강산과 개성 지역의 3개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남북공동영농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다. 이 정부 들어 통일농수산은 개점휴업 되었고 실무자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잡족’으로 버텨 왔던 우리들에게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천안함 담화로 확실히 마음 접으라고 하셨으니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하다고나 할까?

다만 이 대통령이 아셔야 할 것 하나는 지금 하는 방식으로 당신이 원하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이다. 통일농수산의 농업협력이야말로 ‘변화’를 보여줄 분명한 수단이 되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단체의 접촉과 교류가 무엇을 얼마나 변화시켰냐고? 매번 주고 터지는 이 한심한 대북관계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이냐고? 돌아보면 협동농장의 변화는 2005년, 2006년, 2007년 다르며 어제 다르고 오늘 달랐다.

처음엔 경계했지만 지금은 의지하게 되었으며 접촉면이 넓어짐에 따라서 남한 사회에 대한 정보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호랑이는 백일을 못 참고 뛰쳐나왔지만 곰은 끝내 참고 나와 한민족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단군신화를 배워야 한다.

심지어 ‘좌파’ 농민운동단체가 북한 농민단체와 만나는 것도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 사상은 삼투압과 같아서 높은 곳, 많은 곳에서 낮은 곳, 적은 곳으로 스며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난형’은 ‘난제’를 절대 다룰 수가 없으며 당장 보기에 답답하지만 그래도 민간 교류와 협력의 채널이 늘어나는 것만이 통일의 지름길이다.

그렇기에 통일농수산의 길을 멈출 수는 없다. 남북이 긴장할수록 ‘농업협력을 통한 남북협력 촉진’이라는 통일농수산의 역사적 임무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북쪽 경제 인구의 36%를 차지하는 농축수산업 종사자들에게 오랜 경험과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진 남쪽 전문가들의 협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식량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 받는 북쪽 동포에게는 우리 식량 생산자의 손길이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이다. 도요새가 조개를 먹으려고 껍질 안에 주둥이를 넣는 순간, 조개가 입을 닫는 바람에 도리어 물려서 서로 다툰다는 뜻으로 방휼지쟁(蚌鷸之爭)이라는 말이 있다.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다투면 어부가 힘들이지 않고 이들을 주워서 이득을 본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가 이와 같다. 남북이 다투는 사이에 중국과 미국은 손익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우리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반응과 입장에 목을 매고 있으니 이건 자연산 조개도 아니고 양식장 조개 같은 신세가 아닌가?

민주와 통일은 자주 없이 이룰 수 없다는 오래된 구호가 눈에 뜨인다. 1985년 5월 23일, 미문화원 점거 농성 대학생들이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던 것이 정확히 25년 전이다. 그동안 자주·민주·통일은 시대 뒤로 사라진 중고품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역시 자민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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