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발에 편자나 박는 정권

  • 입력 2010.05.31 08:36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 이 글이 저로서는 마지막으로 쓰는 글입니다. 따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오래 제 ‘넋두리를 들어준 분들께는 사죄의 말씀이라도 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습니다. 근 삼년, 좋은 자리에 멍석을 깔아 주었는데 그야말로 ‘개 발에 편자’나 박는 소리만 늘어놓은 꼴이었다는 자괴감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깜냥에 글을 쓰는 프로인 주제에 늘 게으름만 부리다가 마감에 쫓겨 문장도 엉망이었고 중언부언 하느라 논리도 정연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기, 영천에도 막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가 심어지는 논바닥을 내려다보면 마음은 영 심란해서 거푸집 같이 찬바람만 마구 들이칩니다. 올 가을은 쌀이 또 얼마나 아프게 농민들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인지 눈에 선합니다.

오늘 제 마지막 글은 이 나라 농사꾼이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쌀’을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쌀! 이 단어는 이 나라에서 수천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위정자들이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요새를 초토화시키는 텔레비전 화면 위로 자꾸만 한국 농촌이 겹쳐지는 바람에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제 머릿속에는 맥없이 거꾸러지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아프가니스탄 요새의 모습에 초토화되는 우리 농업의 현실이 안타깝게 교차하며 아로새겨집니다.

돌아보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인 미국이 우리 농업, 특히 쌀에 퍼부은 십자포화로 이 땅의 농업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한국농업에 대한 뉴라운드의 위력은 ‘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지요. ‘쌀’에서 뉴라운드의 위력을 체감한 농민들의 절규가 아직도 전국의 들판을 메아리치고 있지 않습니까.

농민들은 지금 당장에 400만석 정도를 북한에 지원해주지 않는 한 쌀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쌀이 그나마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정부에서 10만호의 전업농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던 그 당시 몇 해가 고작이었지 싶습니다.

그 전에는 쌀값이 물가상승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저농산물가격정책이 실시된 이래 문전옥답은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었지요. 공산품을 팔아 국제가격이 헐한 쌀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혹세무민의 비교우위론이 득세하여 이 나라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였지요. 정부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다국적기업의 논리를 홍보하는 나팔수 노릇만 하다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고요.

안타깝게도 우리 농업의 구조적인 모순은 ‘쌀’이 무너지면 여타 품목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차례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오래 전부터 소리 없이 잽싸게 작목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사과·포도·복숭아·자두 등이 엄청나게 심어졌지만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정부는 농산물 수입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하기 이전에,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정책을 수립해야 했습니다. 장벽을 없앤 무차별적 농산물 수입은 결국 소수 품목으로의 집중적인 작목전환으로 이어졌고, 과잉생산이 가격폭락을 부르는 악순환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생산하고, 2백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농기계 생산과 농산물 유통 등 농업관련 산업을 합하여 GDP의 15%, 전체 산업종사자의 25.3%나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GDP의 2%밖에 안 되는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을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합니다. 그렇다고 수출보조금 없이도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 케언즈(cairns)그룹의 국가들을 부러워할 수도 없고, 꿈에서라도 외국농산물 수입을 생각하지 못하는 후진국의 농업을 부러워할 수도 없는 농민들만 답답합니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요. 하지만 정부나 국민들은 농업을 단순히 애물단지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희생’만 강요하고 ‘회생’을 외면하는 정부는 농사꾼의 정부가 아닙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