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된 농민운동 하나로 묶어세울 것”

전농 전북도연맹 서 정 길 의장

  • 입력 2010.05.23 20:14
  • 기자명 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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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여평의 밭농사를 짓고 있는 서정길(63)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 그는 평범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1967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여태까지 다른 직업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이 농사만 지어온 전형적인 한국 농민이다.

지난 18일 전북 전주시 소재 전북도연맹 사무실에서 “분산돼 있는 농민회를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 서정길 의장을 만나 삶과 농사, 그리고 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농민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제정 때부터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자연스럽게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게 됐고, 80년대부터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시작 했다. 이후 광주 민중항쟁과 6월 항쟁을 거쳐 1990년 2·13 전국농민대회 때는 전북가톨릭농민회 총무를 맡기도 했다.

▲ 서정길 의장

1990년 4월 전농 결성을 위해 농민운동 단체가 농민운동연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전라북도 재정위원회를 맡게 됐고, 이후 전북도연맹 건설과 함께 재정위원장, 부의장 등을 역임 했다. 지금까지 전북도연맹 부의장, 전농 부의장, 완주군농민회장 등 25~26년을 농민회와 함께 해 오면서 2회에 걸쳐 수배 생활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은?

소몰이 투쟁이다. ‘소 값 파동’으로 터진 소몰이 투쟁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정부당국에서 융자까지 해주며 소 사육을 권장해 놓고, 미국으로부터 소와 쇠고기를 대량 수입해 소 값을 떨어뜨려 발생한 것이다.

120만원~1백30만원 주고 구입한 소가 85년에 8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그래서 현물로 가져가라고 싸웠다. 소몰이 싸움을 벌여 내기 위해 소를 몰고 산을 넘어서 장수군 장계면까지 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안군에서는 전경들과 육박전을 벌이기도 했다.

-생활은 어떻게 하나?

작년까지는 고추농사를 많이 했다. 군 농민회장 정도만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복숭아를 몇 년전부터 심어야지, 심어야지 하면서 아직까지 못 심고 있는데 올 가을에는 꼭 심어야 한다. 집사람한테 혼나지 않으려면(웃음). 농사 이외에도 건강원을 운영 한지 20년 정도 됐다.

-도 의장으로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도 의장 결심을 하면서 분산된 농민운동을 하나로 묶어 내겠다고 다짐 했다. 그동안 전농 의장과 도연맹 의장에 출마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업 현실 속에서 이를 타개 하려는 생각들 또한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산된 힘으로는 현재의 난국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산된 힘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가장 우선에 놓고 사업을 펼칠 것이다.

-앞으로 농민운동이 나가야 할 방향은?

우리 농업이 파탄 났을 때 후손들이 식량자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된다. 기업농이 아니라, 중·소농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게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서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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