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에 그친 피해 조사, 대책은 안 봐도 뻔하지”

일부 농가만 피해 집계… 대부분 조사 사실조차 몰라

  • 입력 2010.05.03 08:5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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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작물 조사하다 전체로 확대
작물별 특성 반영 않고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
농협은 뒷짐 지고 정부 정책만 대행하나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의 피해가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번지자 정부는 뒤늦게 피해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피해조사에 대해 농민들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조사에 그쳤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지난 달 19일 전남의 여성농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피해대책을 촉구하면서 조사 행태를 문제삼았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소속의 농민 35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일조량 부족에 대해 피해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책내용도 문제지만 피해조사도 극히 일부의 농가만 집계되는 등 부실했다”고 지적하며 “그에 따른 대책이 얼마나 허술할지 안 봐도 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영이 전남연합 사무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군의 읍면 사무소에서 피해조사를 진행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농가들은 조사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며 “전남도가 4월 10일까지 피해조사 신고를 마감했는데, 뒤늦게 소식을 접한 농민들은 피해접수만 될 뿐 보상이 어렵다는 농정과 직원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작물만 조사하다 다시 전체로 확대 = 이같은 이상기후 피해조사는 전국에서 실시됐으나, 부실조사 사례도 들춰지고 있다.

충남 부여의 한 수박농가는 “읍사무소에서 조사를 한다고 나왔는데 3월 30일 조사를 시작해서 3일만에 완료했다. 처음에는 재정식 한 수량만 조사했다가 며칠 지나서 전체적으로 조사했다”며 초기에는 일부작물만 조사를 하다가 전체 조사를 하는 등 일관성 없는 조사지침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또 조사기준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부는 피해 조사기준을 수확량으로 한다. 고추, 오이, 수박 등은 현재 피해가 눈에 띄지 않아서 육묘를 구입한 영수증으로 확인했다”며 “농사 시기는 작목별로 천차만별인데 조사 기간이 짧으니, 작물의 특성이 하나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답답해 했다.

같은 지역 토마토 농가도 “읍사무소 관계자가 사진을 찍고 피해 조사를 했다. 저녁때 와서 묘를 몇 포기 심었나 확인하고, 육묘장에서 영수증을 받아다 달라고 했다”며 “대부분의 피해조사가 형식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이없는 공무원들의 소극적 조사 태도 = 전남 장흥 지역 농민들은 공무원들의 피해 조사 태도에 대해 불만이 높았다.
장흥에서 3,000여평의 토마토 시설농사를 하고 있는 이모씨는 “시설농가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기는 애초부터 글렀다”고 단언 했다. 내용인즉 피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왜 우리집은 조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담당 공무원이 조사 서류를 보여 주며 “조사 항목에 토마토는 없다”고 말 했다는 것. 이씨는 “처음에는 행정 착오려니...하고 이해하려 했는데, 토마토에 대한 피해 조사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흥군농민회 관계자는 “방울토마토를 시설하우스에 심었는데 ‘방울토마토’라는 작목이 공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에서 제외시켰다”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했다.

실제 본지가 지난달 29일 전남도로부터 받은 시군별 품목별 피해현황에 따르면 장흥군에는 방울토마토 피해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표고 피해는 조사 항목 아니다 = 전남의 경우 시설채소의 피해뿐 아니라 보리, 양파 노지작물과 표고버섯 등 임산물의 피해가 심각한데도 이들의 패해조사가 없었다.

전남 장흥에서 2만본의 표고버섯 재배를 하고 있는 박모씨는 “지역 공무원들이 교과서적으로 위에서 내려온 것만 조사 하고 다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씨에 의하면 지난 겨울 일조부족으로 낮에도 기온이 올라가지 않으면서 표고, 보리와 같은 노지 작물들이 저온과 과습의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

장흥 지역은 3, 4월동안 본격적인 표고 수확이 이루어지는데 올해의 경우 기온이 낮아 발아한 표고가 크기도 전에 나무에서 얼어 죽었고, 과습으로 생산 되고 있는 표고 또한 모두가 물버섯이 돼버려 가격도 하락 했다. 4kg 당 50만원씩 하는 건표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고, 상품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표고 외에도 보리는 습해가 심해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이 보리논을 갈아엎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양파도 생육이 부실하고, 경영비가 2배 이상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보식 하면 대파비 없다? = 경북 성주에서 참외농사를 하고 있는 김모씨는 일조부족으로 인해 과습 피해를 받아 참외가 넝쿨째 죽어버려 다시 모종을 해서 심었는데, 이럴 경우 대파비를 지원 할 수 없다는 방침을 들었다. 그는 “참외는 일시에 수확 하는 수박과 달리 여러달 동안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수확을 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죽은 자리에 새로 모종을 구입해 보식을 하고 있다”며 “도대체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 대행기관으로 전락한 농협 성토 = 성주 지역 농민들은 참외 농가 피해조사 과정에서 농협의 역할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 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들과 함께 피해조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발표는 정부에서만 하고 농협은 자체조사 결과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모(54)씨는 “농협은 이미 협동조합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대행 기관이 돼 버렸다”며 “철저한 신경분리를 통해 농민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 하는 협동조합의 본질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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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밀과 보리도 피해 조사 요구

전남 해남군에서는 봄철 잦은 비와 날씨 이상으로 논보리에 황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농민들이 피해조사를 요구 하고 나섰다.

해남군농민회(회장 김영동)는 시설채소 피해조사와 형평성을 맞춰 밀과 보리에 대해서도 피해조사를 실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농민회는 현재 문내와 송지, 옥천 등에서 트랙터로 보리논을 갈아엎은 농가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군에 피해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해남군 관계자는 “밀과 보리는 알곡을 수확하기 때문에 피해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영농을 위한 연구 차원으로 농업기술센터에 조사 의뢰를 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농민회는 읍면지회를 중심으로 자체조사에 착수 했으며 정부가 보리, 밀에 대한 피해조사와 보상 등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트랙터를 동원하여 모두 갈아엎겠다는 방침이다.

해남군농민회 김영동 회장은 “분명히 피해가 발생 하고 있는데도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한 직무유기”라면서 “이후 대책은 4월 말 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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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 보리수확 포기 농가 속출

전남 장흥지역 농민들이 잦은 비와 저온 등 이상기온으로 인해 보리 생육이 부진하자 재배를 아예 포기하고 트랙터를 이용해 보리를 갈아엎고 있다.

4월 말인데도 보리생육 부진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보리재배를 중도에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흥지역 뿐 아니라 전남지역 전반적인 상황으로, 보리의 생육부진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장흥군농민회 관계자는 “비가 오거나 햇볕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보리 키가 자라지 않고 적정 수준의 이파리도 나오지 않아 보리수확이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이며, 수확하더라도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5조원을 쓰겠다면서도 농민들의 실상은 외면하고 생색내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는 전남도도 영산강개발 등 전시성 사업에만 몰두하고 전남 농정에 관심 없는 것과 같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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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조사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손을 쓸 수 없는 이상기온 피해에 망연자실한 농가들은 근거 없는 소문에 또 한번 마음을 다쳤다.
부여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반파(50%)는 20동 이상이어야 보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소규모 농가 피해는 피해가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수박농사를 짓는 한 농민도 2천평 이상만 보상해준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논산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농민의 경우 “하우스 20동 이상 재배하는 농가에게만 보상해 준다”는 말을 들었다며 보상을 포기하고 있었다. 

충북 청원에서는 100% 피해를 봐야 보상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청원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는 농민은 “600평 이상에 100% 피해가 나야 50만원 보상해준다고 해서 우리 동네에서는 그깟 50만원 받지 않겠다며 사람들이 피해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전국적인 피해규모가 국가재난 수준인데 정부의 일관된 지침이 없으니 이런 소문이 떠도는 것”이라며 “날씨는 농민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대비책을 범정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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