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호_조합장 선거]“농민을 위한다던 사람도 조합장만 되면 변해”

업체로부터 리베이트, 지도사업비 유용…가족에게 과다 대출해 땅투기 하기도
인사권, 사업권 틀어쥔 권력이 비리 키워
조합원들의 경영참여로 조합장 견제해야

  • 입력 2010.04.05 09:1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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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농·축협 조합장 선거가 올해에만 3월까지 380여곳에서 치러졌다.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당선자에게 조합원들은 ‘초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진짜 농민을 위한 사람이 조합장이 돼야 농민들이 잘 살지... 그런데 그런 사람 뽑아놔도 그 자리만 가면 나중에 다 똑같이 변하더라.” 경남의 한 지역농협에서 10여년 근무해 온 이 모씨의 말이다.

그간의 선거를 지켜보고 조합장을 ‘모셔 본’ 그의 말 속에는 사연이 많은 듯했다. 이 지역농협은 3개면이 통합돼 조합원은 6천여 명이고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특성을 갖고 있다.

 조합장 선거에 브로커 등장

조합장 선거철이 되면 동네가 술렁인다. 특히 박빙의 대결이 예측될 때는 돈이 더 많이 뿌려진다고 그는 말했다.
“조합장 후보가 나오면 선거브로커들도 움직인다. 브로커들은 선거판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다. 후보자가 브로커들에게 뭉칫돈을 주고, 브로커들은 수수료를 떼고 이를 교묘히 지역에 뿌린다.

흔히 말하길 ‘돈 질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후보자들이 직접 뛰는 아마추어 같은 일은 없다”며 “후보자를 기점으로 일종의 피라미드 형태로 돈이 확산된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박홍규

 

브로커 외에도 중간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후보자들이 신뢰하는 지인들로 이들 역시 뭉칫돈을 받아 현장에 뿌리고 한 표를 호소한다.

그런데 이 모씨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벌이던 어떤 이는 선거 후에 땅을 사는 일도 있었는데 이를 두고 “돈 나올 구석이 없는 처지인거 뻔히 아는데.. 선거 때 받은 돈으로 땅을 산 것”이라고 그 집 속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들이 수근대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돈 선거가 표면적으로 사라졌지만 농촌마을의 돈선거는 여전히, 은밀히 진행중이다.

그렇다고 이를 고소하는 일도 쉽지 않다. “농촌은 친인척, 학교 선·후배 등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수십년을 함께 자란 곳이다. 세간살림도 훤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끼리 신고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신고를 한 사람이 되레 나쁜놈으로 찍히는 경우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합돈, 사금고로 전락하나?

보통 선거운동을 하면서 3~5억이 든다는 말이 있다. 후보자들이 선거에 그만큼 돈을 쓰는 것은 당선만 되면 본전은 뽑는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 농협의 경우만 해도 조합장 연봉이 8천만원인데 여기에 별도의 업무추진비가 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받는 월급 외에도 지역의 각종 사업권과 임직원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조합장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때문에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거나, 지도사업비를 유용하거나 인사 관련 금품수수 등 돈이 들어오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하는  감사와 이사도 조합장의 눈치를 보느라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합돈이 조합장의 사금고처럼 이용된다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듯했다. “조합장은 자기돈 한 푼 안들이고 이름 내세우기 딱 좋은 자리”라고 말하는 그는 “직원 출신 조합장이든 누구든 다 똑같았다. 군의원 시의원보다 조합장이 더 낫다는 말이 왜 나왔겠나. 조합장 권력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라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 지역에서만 벌어지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라며 “가끔 직원 교육이 있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디나 다 똑같은 얘기가 나온다. 조합장을 차라리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하면 더 낫지 않겠냐는 말까지 나올정도”라고 전했다.

다른 후보 지지하던 직원 전출시키는 일도

다른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인사권을 행사해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거나, 한직으로 보내는 게 그것이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에 비해 도시근교의 조합장 선거 모습은 조금 다르다.

인천과 파주의 조합원들은 “예전처럼 돈 뿌리며 조합장 표를 얻는 모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 선관위에서 조합장 선거를 관여한 후 돈 선거는 많이 사라졌다”면서도 “조합장의 막강한 권한이 축소돼야 하고 감시와 견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은 잊지 않았다.

실제 파주의 한 조합에서는 조합장이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처에게 과다한 대출을 해 줘 물의를 빚었다. 이 지역은 부동산 개발로 한참 붐이 일었던 터라 조합 돈으로 땅을 사서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조합의 주인은 농민이다

이러한 조합경영의 부정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조합장이 독점하는 권리를 분산하고, 조합원들이 조합경영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충남의 한 농협 대의원은 “무엇보다 대의원총회 예결산 자료를 쉽게 만들어야 한다. 단어도 전문용어 말고 일상용어로 풀어 쓰는 일도 필요하다. 조합운영을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됐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조합의 주인인 농민들의 관심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인 농촌의 모습을 한계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경기도의 한 조합원은 “5천명의 조합원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다. 10년 안에 조합원의 60%가 감소될 것”이라며 “이들이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젊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달가와 하지 않는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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