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텃밭 만들자”...“식량주권 맞아 맞아”

여성농민들의 왁자지껄 장 담그기

  • 입력 2010.03.14 18:53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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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잔뜩 흐린 날이 결국은 눈을 내렸고 하얀 눈송이에도 아랑곳없이 진천군 여성농민 20여명이 모여 장을 담갔다. 여성농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주축이었지만 도시지역의 어린이집 등에 보내기 위해 고추장과 간장을 담그는 것.

공부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장 담그기에 앞서 메주를 빻아 가루를 만들고 커다란 고무 대야에 소금물을 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 진천군여성농민회 회원들이 장을 담그고 있다
이윽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자, 식량주권과 우리텃밭에 대한 교육이 시작됐다. 이날 교육은 구점숙 전국여성농민회 사무총장이 강사를 맡았다. 구점숙 사무총장이 식량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농사경험을 토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자 할머니들은 연신 ‘맞아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예로부터 종자를 지킨 사람들은 여성농민들이었지만 이제는 초국적 농기업들에 의해 종자도 빼앗기고, 그런 종자를 재배하기 위해 초국적 기업이 생산한 농약을 뿌려야만 하게 되는 우리의 농업현실에 대해 할머니들은 이론이나 책이 아닌 농사를 통해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제철꾸러미로 지난해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텃밭 사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여성농민들이 텃밭을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해 소득을 올릴 수 있기에 작게라도 시작하자는 이야기들도 오갔다.

진천군여성농민회는 올해부터 5백평 규모의 텃밭을 얻어 고추와 콩을 직접 길러 장을 담가 도시지역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만난 진천군농민회 회원은 지방선거 준비에 바빴다. 그 와중에서도 장을 담그니 막걸리 한잔하자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건다.

교육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장을 담갔다. 메주를 씻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은 뒤 항아리 가득 소금물을 채우고 숯과 잘 익은 붉은 고추를 넣어 간장을 담갔다.

간장을 담그는 것은 손이 덜 가지만 고추장은 손이 많이 간다. 곱게 빻은 가루에 단술(감주)과 삶은 보리 물, 엿, 소금물 등을 넣고 반죽을 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할머니들이 한마디 씩 하기 시작한다. 반죽이 진하기 때문에 물을 더 넣어야 한다며 물을 붓는 할머니, 싱겁다며 굵은 소금을 뿌리는 할머니와 이에 맞서 소금이 완전히 녹지 않아서 더 넣으면 안 된다고 말리는 할머니 등등 장맛에 대한 논쟁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장을 담그는 방식이 같은 지역이라도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말 많은 집 장맛은 쓰다고 했지만 이날 담근 장맛은 달기만 할 것 같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런 장 담그기가 마무리되자 점심을 먹어야 할 때가 다가온다. 자장면을 시켜먹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인근 면소재지에 있는 식당을 예약하기로 했다. 좀 낯선 분위기였다.

그래도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모여서 하는 일인데 밥을 사먹는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눈치를 챘는지 한 분이 “밥 나가서 먹자. 아주 밥하는 거 지겨워. 매일하는 밥인데 우리끼리 나가서 먹자”고 이야기한다.

남성회원들이 주축이 농민회 행사에는 회원 부인들이 나와서 의례 밥을 하고 국을 끓여 점심을 준비한다. 도연맹 대의원대회도 그렇고, 체육대회, 가족한마당 모두 비슷한 분위기다.

 

▲ 고추장을 담그고 있는 여성농민들.
장 담그는 걸 핑계로 막걸리는 생각나지만 여성농민들에게 밥 한 끼 해줄 생각은 나지 않는가 보다. 어느덧 장 담그기가 마무리되고 식사를 하기 위해 덕산면으로 향했다. 도시사람들이 보면 정겨운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그 이면으로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열심히 장을 담그시던 할머니는 식사를 하시며 유주영 진천군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을 칭찬한다. 같은 마을에 사신다는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 이제 젊은 사람들은 저 내외밖에 없어. 그래서 직책이 수도 없이 많아. 온갖 일을 다해”라고 말씀을 하신다.

사실 유주영 사무국장도 마흔을 훌쩍 넘겨 젊다고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농촌에서 40대는 청년으로 취급받는 게 사실이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됐다.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 남아 있지 않아 이런 행사들, 우리텃밭을 지키는 농민들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소멸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여성농민들의 우리텃밭 사업과 토종종자를 지키는 일은 농촌을 지키는 희망으로 다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진천군여성농민회(회장 정해순) 회원들은 개미공부방에 모여 장담그기 행사와 식량주권과 우리텃밭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진천=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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