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자의 중얼거림

  • 입력 2010.03.02 12:45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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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이번에는 빗나갔다. 그 예보 때문에 새벽 네 시까지 미뤄두었던 원고를 붙잡고 씨름했다. 때마침 곧 고3이 될 막내가 밖에서 친구들과 한잔을 하고 외박을 해도 되겠느냐는 시건방진 요청을 해왔고, 겨울이면 작업실이 없어지는 나는 얼씨구나 싶어 허락을 해버린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밤새도록 담배연기 때문에 마누라 지청구에 시달렸을 일이었지만 나는 막내 방에서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안방에다 재떨이를 갖다 놓고 사는 강심장의 사내라고 소문이 난 터이기는 했지만, 언제부턴가 내게도 헐렁하기만 했던 마누라로부터 심한 협박이 가해지고,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자기혐오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끽연에 대한 혐오감이 우리 사회에서 팽배해질 무렵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운다는 도시 사내들의 얘기를 들으면 코웃음을 치곤했다. 안방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머저리가 무슨 가장이냐고 큰소리를 쳤다. 안방에서 자리 잡고 있는 재떨이는 남자의 권위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안방에서 재떨이가 치워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끽연에 대한 혐오감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세상이 일제히 오두방정을 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연대열에 휩쓸려갔다. 담배 끊는 일이 첨단을 걷는 무슨 유행도 아닐진대 사람들은 다투어 거기로 우르르 몰려갔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법정전염병 보균자도 아니건만 저희들끼리만 놀고먹겠다고 싸가지 없이 금연구역이 선포되기 시작했다. 어쩌다 큰 도시에 나가 시인들을 만나면 시인들도 많이 금연 감옥에 갇혀 살고 있었다.
간혹 끽연동지를 만나기라도하면 ‘담배 피우는 짓거리’를 용서해주는 공간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이 이쯤 되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자기혐오감과 조우하는 일은 참 곤혹스럽다.

세상이 한꺼번에 오두방정을 떨어대니까 생각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안방에서 재떨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루에도 마루 밑에도 마당가에서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말로만 듣던 일이 나에게까지 닥쳐왔다는 생각은 아찔했다.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는 다친 짐승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담배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 재떨이는 도처에 널려 있다. 종이 한 장을 몇 번 접으면 재떨이였다. 그러나 그 좁은 종이 속에 침을 뱉어가며 담배를 피워야하는 사내들의 비참함과 초라함은 글로 표현하기에도 옹색할 뿐이다. 대체 인간들의 삶에 대한 욕망은 어디까지 바벨탑을 쌓겠느냐고 흰소리를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면, 사람들은 마약중독자로 몰아붙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임계점은 있지 않겠는가.

담배를 왜 피우는가?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요즘 세상에도 담배 피우는 인간들이 있나? 그렇게 노골적인 적대감과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어휴 담배냄새야, 다른 곳으로 가자.

이런 천대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야박한 세상인심에 내 가슴 한 구석은 북극의 빙하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지금까지 왜 담배를 피우느냐는 질문에 한번도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이 귀찮았을 뿐이었다. 누구는 할 말이 없으니까 농담 삼아 비싼 돈 들여 배운 걸 왜 끊느냐고 했지만, 굳이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내 말은 아마 이럴 것이다.

끊고 싶지 않아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혹자는, 당신은 짐승이야. 그렇게 단정해벌 수도 있을 것이다. 몸에 안 좋은 연기를 굳이 들이마시겠다는 건 생각이 없는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단정일 터이다.

나는 일어나 북으로 난 창을 연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막내 방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소용돌이를 친다. 막내가 돌아오기 전에 이 방안에 밴 담배냄새를 최대한 지워주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벽걸이에 걸린 옷을 장롱 안에 넣는다는 것을 또 깜빡했다. 나는 서둘러 막내 옷 몇 가지를 밖으로 들고나가 빨랫줄에 걸어 놓는다. 안방에 재떨이를 갖다 놓고 큰소리를 치던 내 모습이 이렇게 초라하게 망가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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