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시트의 농업 비관세장벽 문제, 어떻게 안심하나
지난 4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겠다며 국제 무역질서를 뒤흔든 지 7개월 만에 한미 관세협상이 종료됐다. 우리 정부는 쌀, 소고기 등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은 없다고 농민을 안심시켰고, 지난 14일엔 한미 양국 간 ‘팩트시트’가 공개됐다. 팩트시트는 관세협상 결과를 서로 합의해서 간결하게 정리한 문서다.
하지만 팩트시트에 담겨 있는 농업 분야 내용이 결코 안심할 수 없어 문제다. 팩트시트의 농업 관련 사항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미국산 농업생명공학 제품의 규제승인 절차 효율화와 미국 신청 건 지연 해소로, 미국산 유전자조작체(GMO)의 국내 규제승인 절차를 더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산 원예작물 관련 요청을 전담할 ‘U.S. 데스크(Desk)’ 설치다. 이는 미국의 농업 무역 관련 다양한 요구를 담당할 우리 정부 내 공식 채널이 신설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별도의 기구가 아닌 ‘담당자’ 배치 형식이라는 게 우리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가 주장하듯 GMO 국내 승인 절차 효율화와 미국산 원예작물 전담 채널 신설 등은 ‘직접적인’ 농산물 추가 개방은 아니다. 지난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이 팩트시트에 식품 및 농업 관련 조항이 포함된 것에 대해 질의했을 때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검역 절차, 위해성 검사 등 비관세장벽에 관한 것”이며 이것은 “시장개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시장개방이란 건 관세를 내리거나 수입량 쿼터를 조정하는 두 가지 조치를 의미한다고 덧붙였고, ‘절차의 효율화’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업 분야에 포함된 ‘규제 절차의 효율화·간소화’라는 표현은 그간의 통상협상 과정을 되짚어 볼 때 농산물 수입개방 압박의 수단이 돼 온 것이 사실이다. 농산물 관세를 직접 낮추지 않더라도, 비관세장벽을 ‘투명성 제고’와 ‘절차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무력화해 온 방식이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정부는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직결된 검역·식품안전 기준을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다루는 것 역시 위험하다. 절차를 단축하면 검사 강도가 낮아지고, 기준을 조정하는 것 역시 수입 농식품의 안전성 검증을 뒷전으로 밀어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는 국가별 무역장벽 연례보고서를 통해 GMO 농산물과 동식물 위생검역 규제를 ‘무역장벽’이라며 줄기차게 철폐를 요구해 오지 않았나.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과 농민의 생존권이 담긴 문제다. 정부는 말로만 한미 관세협상을 걱정하지 말라고 해선 안 된다. 농민과 국민에게 정책과 제도라는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