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다카이치정권의 농정 변화

2025-11-23     정만철 농촌과 자치연구소 소장
정만철 농촌과 자치연구소 소장

지난달 21일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했다.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근소하지만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정책 변화를 이끌기에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취임한 스즈키 노리카즈 농림수산대신은 이시바정권에서 추진해 온 ‘쌀 증산’ 정책에서 ‘수요에 대응한 생산’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다. 불과 3개월 만에 쌀 생산 조정 기조로 돌아간 것이다. 스즈키 농림수산대신은 현재의 높은 쌀 가격은 유지하면서 ‘쌀 상품권’으로 소비자의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쌀 상품권’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아 당분간 일본의 쌀값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즈키 농림수산대신은 취임 직후인 10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수요에 대응한 생산이 원칙, 안심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농정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쌀 증산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의미이다. 일본은 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1970년도부터 생산 면적을 줄여 왔지만, 경쟁력 제고를 주장하는 생산자의 목소리에 2018년 공식적으로 쌀 생산 조정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부가 쌀 생산량 목표를 낮게 제시하는 등 사실상 생산 조정제가 지속돼 왔다. ‘레이와 쌀 소동’을 겪으면서 이시바정권이 쌀 증산계획을 수립했지만, 다카이치정권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농림수산성은 지난달 31일 2026년산 주식용 쌀의 수급 예측을 토대로 내년도 쌀 생산량 목표를 711만톤으로 결정했다. 2025년산 쌀의 예상 수확량이 748만톤인 것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양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농가의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민당에 대한 농민들의 지지율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스즈키 농림수산대신이 “생산 현장에서 쌀이 남아돌아 쌀 가격이 폭락할 수 있어 걱정이다”라고 강조한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공급 확대로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이시바정권의 정책을 뒤엎은 셈이다. 다카이치정권에서는 정부가 쌀값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비축미를 방출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생산자에게는 직불금을 확대하고, 소비자에게는 쌀 상품권을 지급함으로써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방침이지만,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이들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추진될지는 알 수 없다.

지난 8월 말에 이시바정권에서 수립한 내년도 농림수산 예산액은 총 2조6588억엔으로 2025년도 예산 2조2706억엔 대비 17.1% 증가했다. 이 가운데 쌀값 급등이 생산량 감소에 따른 쌀 부족에 원인이 있다는 인식에서 쌀 관련 예산도 크게 증가시켰다. 하지만 스즈키 농림수산대신의 방침처럼 다카이치정권의 쌀 재배면적 축소 기조를 유지한다면 내년 예산도 이대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올 4월에 각의 결정한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이 여당인 자민당의 농정 기조가 되고 있어 다카이치정권의 드라마틱한 농정 전환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자민당과 새롭게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유신회의 주요 농업정책인 MMA 물량 이외의 수입쌀에 대한 관세 인하, 주식회사 등의 농업 참여 촉진, 지역농협의 금융사업 분리 촉진 등에 대해 자민당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농기구왕’이라는 농기계 회사에서 전국 농업인 154명을 대상으로 다카이치정권의 농업정책에 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정권 교체 후 정책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78명(50.6%)이 ‘정책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76명(49.4%)은 ‘느끼고 있지 않다’고 응답해 농업 현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해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에 대해서는 ‘국내 농산물의 가격 안정’이라고 응답한 농업인이 72명으로 46.8%를 차지했고 ‘농지 집약 및 청년 등 신규 농업인 지원’ 28명(18.2%), ‘스마트농업·생력화’ 26명(16.9%) 등의 순으로 나타나 쌀값 안정을 비롯한 농업 현실에 대한 다카이치정권의 실천적 농정 추진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막 시작한 다카이치정권의 농업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 관심갖고 볼 일이다.

개인 사정으로 이번 기고가 필자의 마지막 ‘지금 일본은’ 투고가 되었다. 그동안 변변치 못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독자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