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볏값 결정 미루며 농민 인내심 시험하나

각지에서 커지는 ‘나락값 8만원’ 촉구 목소리

2025-11-21     강선일 기자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4일 전남 무안군 농협중앙회 전남본부 앞에서 ‘나락값 8만원 보장 광주전남 농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농민들이 지역 곳곳에서 가져온 나락을 농협 앞에 쌓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벼 재배 농민들의 한 해 농사 결실이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인 볏값. 이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농협 조직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나 올해도 농협 조직 전반은 볏값 인상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지역농협이 볏값 인상 회피 수단으로 자주 꺼내 드는 카드는 ‘우선지급금’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벼 주산지인 호남지방의 지역농협 다수는 농민들에게 나락 40kg당 6만원 선의 우선지급금을 책정해 내미는 상황이다. 볏값 즉각 인상은 부담스러우니, 벼 수매가 중 일부만 먼저 농가에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타 지역농협 볏값 결정 양상을 살펴보며 인상 폭을 조절하는 게 그동안 다수 지역농협의 볏값 책정 방식이었다. 지역농협들의 이러한 ‘눈치 게임’이 전개되니 볏값 결정도 전반적으로 미뤄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현장 농민들은 지역농협이 우선지급금부터 지급하며 볏값 결정을 미루는 것은 기만적 행위임을 지적한다. 우선지급금을 6만원 선으로 묶어놓은 채 현장 나락값이 떨어지는 걸 수수방관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하고, 최소한의 나락값 8만원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이다.

최근 농민들은 각지에서 농협중앙회(회장 강호동) 및 지역농협을 향해 ‘나락값 40kg당 최소 8만원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키우는 중이다.

일례로 전라남도 농민들은 지난 14일 무안군 농협중앙회 전남본부 앞에서 ‘나락값 8만원 보장! 광주전남 농민대회’를 개최했다. 쌀값이 정상화되는 마당에도 전남 지역농협들은 여전히 볏값 인상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어, 전남 농민들은 농협 전남본부 앞에 모여 집회를 연 뒤 나락 적재 투쟁을 감행했다. 이날 농민들은 농협 전남본부 앞에 나락이 가득 담긴 톤백 77개를 쌓아 농협 전남본부 직원들을 긴장시켰다.

전남 각 지자체의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볏값 인상 대신 40kg당 6만원(나주·영암 지역농협 6만5000원)의 우선지급금부터 지급하겠다는 식의 ‘담합’ 양상을 보이며 최종 볏값 결정은 미뤄왔다. 우선지급금은 미곡 상인들의 나락 매입 시 사실상 ‘기준 가격’처럼 작용해, 결과적으론 나락값 하락을 더욱 부추긴다. 전남 농민들은 이런 식으로 우선지급금을 6만원 선으로 묶어놓고 현장 나락값 하락을 수수방관하는 농협 조직(농협중앙회, 지역농협)을 규탄했다.

전남 농민들은 수확기 이전인 지난 9월, 농협 전남본부를 향해 “가을 수확기 이전에 나락값과 나락 매입량에 대해 농민회와 협의하자”고 제안한 바 있으나, 농협 전남본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금품수수 혐의’로 집무실을 압수수색 당한 형국이다. 농민대회 참가자들은 이 상황을 거론하며 “위(농협중앙회)·아래(농협중앙회 전남본부, 지역농협)가 다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편 전북 각지에서도 지역농협들이 합당한 수준의 나락값을 보장하지 않자, 고창·익산·정읍 등 각지 농민들은 나락 적재 등을 통한 볏값 보장 투쟁을 전개했다(관련기사 10면). 예컨대 익산 지역농협들의 경우 일반 벼 40kg당 6만원 선의 우선지급금을 책정했는데, 관내 함열·용동·용안·함라농협은 거기에도 못 미치는 5만8000원의 우선지급금을 책정했다. 한편 황등·성당농협은 상대적으로 고급 쌀로서 가격을 더 쳐주는 편인 신동진 벼 40kg의 우선지급금을 일반 벼와 똑같이 6만원으로 책정하는 등 벼 생산량 감소 및 쌀값 상승 국면을 도외시한 볏값 결정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충북 지역 농민들도 '나락값 8만원 조속 결정'을 촉구 중이다. 충청북도농민단체협의회(전농 충북도연맹 등 참여)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충북 지역농협들이 벼 계약재배 농가에 40kg당 우선지급금을 5만~6만원 선으로 지급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충북 지역농협들은 다른 지역 눈치를 보며 아직까지 볏값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생거진천쌀 등 충북 쌀의) 대통령상 수상 등 각종 수상 실적을 홍보하며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가격 결정에 있어선 전국 평균에도 밑도는 헐값으로 또 다시 충북 농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농민값을 후려친다면 분노한 농민들의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낮은 수준의 우선지급금은 그 자체가 사실상 볏값 기준선처럼 작용한다. 볏값 동향을 주시하는 민간 정미소 측 관계자들은 농민들에게 우선지급금보다 ‘약간 더 높은’ 볏값(3000~4000원 선)을 부른다. 생산 과정에서 빚을 졌기에 수매가를 빨리 받아 빚을 털어야 하는 등 여러 이유로 마냥 볏값 결정 때까지 기다리기 힘든 농민들은 결국 민간 정미소에 나락을 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역농협들은 타 지역농협 눈치를 보며 볏값 결정을 미룬다. 기다리다 지친 농민 중엔 점점 민간 정미소로 나락을 파는 이들이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볏값 하락 추세가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