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재해 늑장 대처 “신고주의 뒤에 숨은 책임 면피”

강원 농민들, 피해조사시 “농민과 대화창구 만들어야” 강원도 “시군별 협의체 가능하나 인력 등 어려움 커”

2025-11-18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 강원 농민들은 가을 내내 병충해에 시달린 논밭을 뒤로 하고 강원 원주시로 달려갔다. 이날 한쪽에선 농업인의 날 국가기념식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지만, 강원 농민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의장 오용석, 전농 강원도연맹)은 성명을 통해 가을장마로 인한 농업재해 피해접수가 시작됐음에도 일부 지역에선 담당 공무원조차 이를 알지 못했던 상황 등을 전하며 강원도정의 ‘늑장 대처’를 질타했다. 아울러 현장 농민들이 참여하는 민관협력기구 방식의 피해조사와 재해대책 논의를 즉각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성명은 당일 몇 줄 기사의 보도로 옮겨지는 것에 그쳤고, 성명 발표 뒤 수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농 강원도연맹은 강원도에서 관련한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

지난 11일 제30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이 열린 강원 원주젊음의광장 입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회원들이 강원도 농업재해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강원 정선군 사북읍 일원 5만평 규모에 심긴 콩이 썩어 누렇게 떠 있다. 김영돈 정선군농민회 회장 제공 
강원 정선군 사북읍 일원에서 수확한 콩으로, 정상이라면 노란빛을 띄어야 하나 대부분이 까맣게 썩어 있다.  김영돈 정선군농민회 회장 제공
강원 정선군 남면에서 수확한 팥이 대부분 썩어 있다. 김영돈 정선군농민회장 제공 

지난 17일 강원 농민들은 애초 강원도가 △재난문자로 신고접수를 안내하겠다고 했으나 해당 문자를 받은 농민이 없고 △병충해가 심해져 작물을 모두 뽑아버리거나 하나라도 더 건지고자 수확할 수밖에 없었던 농가들은 피해접수 대상에서 결국 제외됐다며, 이번 피해조사(14일 마감)도 지난달 28일 전농 강원도연맹의 강원특별자치도청 앞 기자회견 뒤에야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이 ‘늑장 대처’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같은 날 강원도청 담당자는 읍면동 담당자가 피해 신고접수 일정을 몰랐던 데 대해 “도는 일단 시군에, 시군은 읍면동까지 다 알렸고, 통상 이장 단위까지 문자를 보내 피해조사를 진행한다. 중간에 오해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재난문자 미발송에 대해선 “처음 도에서 발송하라고 안내했으나, 아마 시군 판단에 따라 이장까진 통보한 것 같다. 부단체장(부시장·부군수) 회의 때도 설명했는데, 시군 홍보 채널 단계의 문제 같다”고 해명했다.

즉 도는 재난문자 발송 시스템까지 활용하도록 안내했으나, 시군에서 시행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이어 “재해로 인한 피해신고 자체는 신고주의다. 재해가 올해 처음도 아니고 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신고부터 하는 게 관행인데, 문자를 못 받아서 신고접수를 못 한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용석 전농 강원도연맹 의장은 “양구군 담당자가 신고접수 내용을 잘 몰라서 농업기술센터에 연락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다 알려줬다고 했다. 그제야 군에서는 중간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도에서는 다 안내했다고 하지만, 시군 말단까지 전달되지 않은 사례가 있는 거다”라며 “더 문제는 신고접수가 늦어져 밭에 작물이 남지 않은 농가가 많아 정작 피해신고 대상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오 의장은 “신고주의라는 말은 책임에서 빠져나가려는 궁여지책”이라고 일갈했다. 신고주의인 것은 맞지만,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당국이 먼저 신고접수 안내에 적극 나서는 것이 ‘행정의 소임’이란 것이다.

“아마 신고접수 결과를 보면, 실제 피해보다 규모가 적을 것이다. 피해를 봤지만 신청 대상에서 제외돼 신고접수 자체를 못 한 농가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농정국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고, 결국 밭에 작물이 남아 있지 않게 된 시점까지 신고접수 안내가 늦어진 것 아닌가. 사전에 피해 현황을 충분히 점검하고, 선제적으로 ‘신고합시다’라고 안내하는 게 도 농정 당국으로서의 책무다.” 오 의장이 지적을 이어갔다. 

피해조사와 재해대책 논의 과정에 현장 농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강원뿐 아니라 전남에서도 나온 바 있다.  반복되는 재해 상황에서 정부·지자체에 매번 ‘늑장 대응’이란 꼬리표가 달리지 않고, 농민들도 제때 피해를 신고접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취지이기도 하다. 신고 책임을 개별 농가에만 일임하거나 지연될 수밖에 없는 행정절차만 기다리기보단 재해 발생 초기부터 중간 현황까지 현장의 정확한 상황을 민관이 공유하고 적시에 신고접수 안내체계가 가동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원도 담당자의 답변은 이렇다. “그런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시군별로 논의해서 진행하면 된다. 일선에서 같이 일하는 시군 단위에서 움직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러나 읍면별 담당자가 대게 1명뿐인데,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현장 확인과 NDMS(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 입력 등 재난관리 업무를 혼자서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결국 현재 인력 구조로는 협의체 운영이 현실성 없는 방안이란 뜻인 만큼, 지자체의 의지와 인력 등 실질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정선군농민회(회장 김영돈)는 피해 농가 400명이 연명한 서명지와 피해 보상 촉구를 담은 서한을 20일 대통령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실, 농업재해심의위원회에 등기우편으로 발송할 예정이다.